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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il Sep 11. 2020

다양함 제곱

나의 여러가지 모습


나라는 사람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어떤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일까.


 이런 고민을 종종하곤 한다. 예를 들면, mbti로 정의할 수 있다. 물론 16가지 성격으로 모든 사람의 성격을 분류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enfj라는 결과는 꽤 나와 비슷하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다. 그리고 때때로 나는 누군가에게는 enfj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내 성격은 하나지만,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곤 하니까.
 

 친구들과도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부분 역할에 따라서 보여주는 모습이 다른 것 같다. 실제로 나도 부모님, 선생님, 친구, 연인, 직장동료 등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모습이 조금씩 조금씩 바뀐다. 심지어 같은 사람과 있더라도, 어떠한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 또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예를 들면, 친구와 여행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다양한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상냥하기도 하지만, 너무 더우면 짜증을 내기도 하고.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사실 다른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보면, 가끔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내가 아는 이 사람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 그래서인지 나는 일대일 만남을 선호하는 것 같다. 두 명에서 세명이 되었을 뿐인데, 분위기가 살짝 달라지는 미묘한 차이가 발생한다. 바뀌는 태도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진다. 물론 가끔은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어떻게 만나도 느낌이 비슷한 사람도 있고, 그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사람도 있다. 어찌 보면, 사람 자체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신뢰하는 정도, 친분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느낌인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게 사실 내 시야를 거쳐서 판단되는 것이니, 함부로 다르다고 판단할 수조차 없는 듯하다.


 그래서 저마다 한 사람에 대해 내리는 평가가 다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만났느냐가 다르기 때문에. 어릴 적에는 내가 아는 그 사람의 모습과 타인이 말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달라서, 혼란을 겪었던 때가 많았다. 점점 시간이 흘러,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맹신하지 말 것.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하면, 배신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고. 나쁘다고 평가하면, 나의 편견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으니.

둘째는, 그러니까 함부로 평가하지 말 것. 내가 맛 본 건 케이크 위의 초콜릿 하나일 수도 있으니. 나조차 나를 잘 모르는데, 감히 내가 남을 어찌 다 알겠는가.


 하지만 여전히 좋은 쪽으로는 맹신하고 싶고, 사실 그렇게 된다.


좋다는 것도 사실 평가지만, 그 사람이 내게 보여준 좋은 모습이 너무 선명하다. 어쩌면 맹신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상처를 피하기 위해 성숙한 척하는 전형적인 어른의 태도인 것 같기도 하고. 기대하고 상처 받는 게, 어릴 땐 물론 힘들었지만 자연스러웠는데 말이다. 철이 없어서인지, 아직 풍파를 덜 겪어서인지, 기대하고 믿게 된다. 일단, 부정적인 평가만 유보하는 걸로.


 근데 그러면,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많은 무게를 지우게 된다. 그들에게는 '좋은' 일관된 태도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나조차도 시시각각 모습이 바뀌기 때문에 이는 명백한 '내로남불'이다. 하지만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너무 큰 간극만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차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어릴 땐, 완벽하게 동일한 모습을 기대했는데, 지금은 그냥 큰 맥락만 비슷했으면 좋겠다. 차이가 있더라도 모든 역할을 관통하는 하나의 일관성 정도는 기대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역할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좋은데, 좀처럼 분리가 안 되는 것 같다.


한때 mbti가 유행했던 이유가 불안함 때문이라고 했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내가 어떤 모습인지 모르겠어서 불안해서, mbti를 찾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때는 끼워맞추기식 분석이라고 얼핏 생각했었는데, 복잡한 내 머릿속을 보니, 누가 객관식처럼 정확하게 답을 제시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결국 mbti도 명확한 답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이 문제는 객관식도, 단답형도 아니고 엄청난 분량의 논술 시험 같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은데,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도, 역할도 많다.
다양함과 다양함이 곱해져, 다양함이 제곱이 되었다. 고려해야 하는 변수가 많아졌다.
어렵지만, 머리가 복잡하지만, 다시 한 번 잘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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