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Fall>
Free Fall저자데이비드 위스너, David Wiesner출판 Harpercollins발매 1988.04.01.
제목은 말 그대로 자유낙하(free fall)이지만 단어가 주는 수평, 혹은 수직의 이미지로는 이 책을 대변하기는 부족하다. 알라딘의 양탄자를 연상시키는 나뭇잎 위의 소년, 그 밑으로 힘차게 파도치는 바다 수면 위 물고기들이 역동성을 풍기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다소 신비스러운 이 그림책은 펼치기 전과 후에 느끼는 상상과 체험의 간극이 꽤 크다. '우와'하는 탄성이 나오는 장면도 작품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림책 하면 흔히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동화책이라 생각한다. 꽤 글밥이 많은 <어린 왕자>는 물론이고 아무리 글밥이 적어도 한쪽에 단 한 줄이라도 그림을 이야기하는 단서가 있어야 당연히 그림책이라 여기는 것처럼. 필자 또한 그랬다. 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글 없는 그림책은 접해보지도 가능성도 따져보지 않았다. 데이비드 위스너의 작품을 접하기 전까지는.
위스너의 모든 작품이 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글 없는 그의 작품으로는 두 번째 작품인데 포스트모더니즘 스타일이 꽤 강하게 느껴진 <Tuesday>에 비해서 이 작품은 좀 더 편안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글이 없는 그림책을 읽었다고 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책은 글밥과 섞인 작품에서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독서 경험을 가능케 한다.
새들과 양탄자처럼 날아가는 지도를 배경으로 제목이 있는 장을 넘기면 양쪽 가득히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그림이 독자를 끌어당긴다.
한 소년이 잠들어 있다. 선선한 초여름인지 가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열린 창문 사이로 커튼이 바람에 나부끼고 멀리 마천루 너머로 보름달도 보인다. 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금발의 소년이 자고 있다. 펼쳐진 지도책 사이로 한쪽 손이 끼어있는 것으로 보아 책을 읽다가 막 잠이 든 듯하다. 녹색과 갈색이 섞인 체크무늬 이불을 덮고 있었는데 한쪽 면이 서서히 변하더니 크기가 점점 커지며 모자이크처럼 외곽선이 변형된 모습으로 드넓은 농지가 펼쳐진다. 넓디넓은 들판 위로 거대한 지도 한 장이 책에서 분리되어 날아간다. 제목 면에 있던 양탄자처럼 어디론가 날아간다. 소년을, 독자를, 뭉게구름처럼 변하는 소년의 베개가 보이고 뭔가 환상의 여행을 예고하는 듯하다.
소년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체스 무늬처럼 정결하고 깔끔한 들판 위에 소년은 깬 채로 서 있고 그의 주위로 중세의 캐릭터들이 몰려들고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체스 모양의 들판은 정말 체스판으로 변하고 기사와 왕, 여왕과 같은 캐릭터는 체스 말에서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다. 이 소년의 모험은 어떻게 진행될 것이고 그 끝은 무엇일까. 왜 이런 꿈을 꾸는 걸까. 그 꿈에서 깨어날 수는 있을까.
이렇게 모든 페이지에는 연결 고리가 있다. 샘물이 강물이 되고 강물이 바다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전혀 어색하지 않고 황당하지도 않다. 오히려 독자의 기존 지식과 상상력을 자극하고 때로는 익숙한 단서로 작용해 읽는 사람만의 이야기를 독려한다. 서양의 책을 많이 읽거나 문화를 접한 독자일수록 친근한 그림 전개 속에서 재미와 반가운 만남을 경험할 수 있는 이 그림책은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아이들에게는 멋진 환상의 여행과 상상력을 선사한다. 마지막 장에서 이 소년이 왜 이런 꿈을 꾸었고 꿈속 캐릭터의 근원이 되는 단서를 하나하나 짚어보다 보면 다시 앞에서 놓친 연결고리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연결, 반복, 꿈의 근원, 환상 여행, 비행, 동화의 세계 이 자체만으로 우리는 어린 시절의 나와 만날 수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잘 모르더라도 관심이 있고 글 없는 그림책 읽기에 도전하고 싶은 독자라면 데이비드 위스너의 작품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