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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와 요셉? 마리아와 안드레아

by 애니마리아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왜 두 분의 세례명이 마리아와 요셉이 아닌가요?"



천주교 신자, 개신교 신자, 종교에 상관없이 기독교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분들이라면 유사한 질문을 던진다.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아서 그리 당황스럽지는 않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고 요셉은 예수의 양부로서(인간 아버지) 성가정의 대명사로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가. 삼위일체처럼 3인의 절대적 삼각을 이루어 어느 하나가 없거나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연대가 탄탄한 관계의 상징이니 말이다.



나는 살면서 동일한 질문을 받는 게 이번 한 번에 한정되지 않아서인지 크게 당황하지 않고 가볍게 대답하려고 한다. 얼마 전에도 회식 자리자리에서 동일한 질문을 받고 우리 부부의 세례명에 대해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저와 남편이 세례를 받은 시기가 서로 달라요."라고 답했지만 그분들이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를 하셨을지 모르겠다. 나도 한때는 남편의 세례명이 안드레아가 아니라 요셉이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그분들의 의아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난 어감을 이해한다. 하지만 세례명은 내가 마음에 든다고 무조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를 통해 신 앞에서 새로 태어나는 이름이자 평생 지녀야 할 이름이기에 세례명을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스스로 성당에 가서 교리 교육을 받고 몇 개월 후 세례를 받았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꽤 늦어서 이미 세례를 받은 친구들이 부러웠고 특히 당시 예쁘게 들리는 세례명을 받고 싶었다. 사실 '크리스티나'나 '안 나', '엘리사벳'과 같은 세례명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마음에 드는 이름, 멋있어 보이는 이름이 아니라 세속에서의 생일을 기준으로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신 성인의 이름을 선택하는 것이 원칙이자 제1규칙이었다. 하지만 정말 내가 원한다면 타당한 이유와 의미를 밝히고 그대로 받는 것도 가능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어린 마음에 내 사심보다는 교회법을 따라야겠다는 생각에 생일에 가까운 성인 축일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른 것이 '마리아(Mary)'였다. 마리아라는 세례명이 반드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도 막달라 마리아, 성모 마리아, 다른 성인이셨던 마리아 등 동일 이름의 서로 다른 성인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세례명은 세속의 이름처럼 새로운 이름보다는 성인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선택되어 대를 잇듯 계속해서 같은 이름이 지어지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결혼할 때 남편은 무신론자였다. 두 아이를 낳고 첫애가 세례를 받게 되자 자신도 성가정의 한 사람으로서 세례를 받겠다고 신부님과 신자들 앞에서 선언하였고 바로 교리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관면혼배'(비신자 배우자가 신앙 배우자와 자녀의 신앙생활을 지켜주겠다는 약속과 허락을 서약하는 의식)를 받고 정식으로 세례 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이후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지켰으며 한 가정의 가장이자 교회 안의 세대주로서 함께 신앙생활을 해 나가고 있다.



그의 세례식이 다가오자 나는 내심 그가 '요셉'을 선택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또한 지인들의 질문에 담긴 의미와 소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요셉을 받으면 그것이 정말 성가정의 주춧돌 역할을 해줄 것만 같은 착각과 환상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안드레아'를 선택했고 나는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안드레아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님의 세례명이기도 하고(정확히는 대건 안드레아) 예수 그리스도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베드로 사도(최초의 교황)의 형제로 나오는 분이 이 이름의 시초이기도 하니 이런 분들을 본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본인의 마음에 특별히 다가온 이름일 테니 나는 반대하거나 의문을 표할 필요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나의 안드레아가 되었다.



혹시 특별한 뜻이 더 있나 알고 싶어서 검색해 보니 안드레아는 원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름이기도 하며 '사내다움, 또는 '용기'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언제나 든든한 반석이자 수호천사의 역할을 하는 그의 성정과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이 아무려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남들이 보기에 얼마나 잘 어울리고 멋있냐가 아니라 평생 자신이 선택한 성인의 길을 배우며 선하게 살아가려는 자세일 테니. 그는 나를,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수호천사와 같은 존재라고 말하지만 그러면 누가 그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될 것인가 나 스스로 질문할 때가 있다. 그보다 더 강한 사람, 더 현명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해지기 때문이다. 그저 상상해 본다. 내게 이름을 주신 마리아 성인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신 분일 거라고. 어설프고 실수가 많아도 노력을 멈추지 않고 슬프고 힘든 일이 있어도 오래 숨어있지 않을 사람이었을 거라고. 사랑 주기를 아까워하지 않고 진심 어린 봉사를 실천하는 사람이었을 거라고. 그런 사람을 본받고 싶은 마음으로.



Mary and 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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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and 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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