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고3 때부터 스무 살이 되기를 고대하고 또 고대하였다. 성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았을 테니. 아이에게 가장 하고 싶은 활동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합법적인 술 마시기. 수많은 특권 중에 하필 음주인지. 원래 어릴 때야 성인이 되기 전에 허용되지 않은 일일수록 하고 싶은 심리는 이해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납득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과거와 달라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정확히 말해서 나와는 다른 생각과 판단을 내리는 모습이 어색해서인 듯도 싶다. 타인은 얼마든지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각인시킨다. 그렇다. 차라리 나와 어떤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의 일이라면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라고 수용하게 된다. 나 또한 성인이 되면 누릴 수 있는 특권과 자유를 열망한 적이 있다. 구속이 심했던 부모님으로부터 독립도 하고 싶었고 통금 시간도 좀 늘렸으면 좋겠고 그동안 입시의 압박 아래 하지 못했던 여행 같은 자유도 누리고 싶었다. 재미있는 건 막상 그 나이가 되고 나서도 그동안 별러 왔던 일을 다 시도하지는 못했다. 새가슴이기도 했고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각인된 높은 도덕적 기준이 작용하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기준일 것이다. 세상이 바뀌기도 했고 아이는 나와 세대가 달라도 꽤 다르다. 나의 기준은 아이에게 어떻게 비추어질까. 아이의 말처럼 부모는 그저 꼰대 중에 꼰대일까. 아이를 구속하기만 하는 과잉보호 부모일까. 그렇다고 아이를 만족시키고자 방임적인 부모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가 자라도 도대체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까지 선을 그어주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아이의 주장처럼 이제 성인이고 선택할 자유가 있다. 술도 마실 수 있고 자유로운 시간에 귀가할 수도 있다. 아이는 왜 자신을 못 믿냐고 묻는다. 아이에게 큰소리 내는 것도, 자제하는 말을 하는 것도 싫지만 하루는 이렇게 말했다.
‘너를 못 믿는 게 아니라 세상을 못 믿는 것이라고. 위험한 일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고’
이 말을 듣고 바로 순종하길 기대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 말 자체를 답답한 어른의 근심으로만 치부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술을 마시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술을 마시되 매일 마시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늦게까지 친구와 젊음을 발산하며 즐기는 것도 좋다. 오히려 내가 마음껏 해보지 못해서인지 아이가 가끔 인생의 즐거운 순간을 누리는 것에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다만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매일 반복되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뭐든지 극단적인 것은 좋지 않으니까. 아이 앞에서 이런 말은 잔소리로 들리나 보다. 어느 지인은 아프고 나면 깨우칠 테고 그 후에는 본인이 알아서 조절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 역시 합당한 말이나 진정 초연하기는 쉽지 않다. 완전히 연을 끊지 않고서 아이에 대한 걱정을 놓칠 수 없다니. 부모가 된 사람의 운명, 거스를 수 없는 끈에 매인 기분이다. 보이지 않는 끈, ‘아름다운 구속’은 남녀 사이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건강에 안 좋다고 말로는 설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건강을 생각하고, 부모의 말에 조금만 더 귀 기울이고 스스로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선택을 했으면 한다.
아무리 세상이 급변하고 그에 맞추어 변해야 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참으로 오묘하다. 때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부부 사이 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나와 나의 부모님과도 어려웠지만 나와 내 아이 사이도 그에 못지않게 복잡하다. 내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경험이 달라서겠지.
아이의 개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부모의 가치관을, 경험을 새겨듣고 참고하길 바라는 마음,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만큼은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이 마음 또한 욕심일까. 너무 지나치면 욕심일 것이다.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자꾸 엇나가는 듯한, 내가 옳다고 생각한 언행을 하지 않는 아이를 보면 불만족스러울 테니까 말이다.
친화력이 유난히 좋은 아이는 전국 거의 곳곳에 새로 사귄 친구가 많다. 출처는 다양하다. SNS 활동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친구의 친구를 만나며 새로 맺은 인연이 한둘이 아니다. 졸업하고도 친구들과의 일정이 거의 매일이라 우리 부부는 아이와 밥 한 끼 먹기 힘들다. 그러다 어느 주말 아이가 길을 따라나섰다. 평소 좀처럼 같이 가려하지 않아서인지 의외의 아이의 반응에 우리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좋았다.
함께 앞으로 가게 될 학교를 둘러보고 사진도 몇 장 찍은 후 근처 해물탕을 하는 식당에 들어갔다. 처음 간 곳이지만 푸짐하고 맛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아이가 좋아하는 해산물을 같이 먹어서인지 오랜만에 ‘식구’ 같다는 생각에 기분도 좋아졌다. 안드레아와 둘이 하는 시간도 좋지만 아이와의 시간도 참 특별하고 소중하다. 아이가 자랄수록, 성인이 되어 또 다른 주인공으로 활약하면 할수록 더욱 그렇다.
거창하게 차려진 음식이 꼭 술안주 같다며 입맛을 다시던 아이와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다가 계산 이야기가 나왔다. 문득 전부터 아빠에게 식사 한번 대접하겠다고 한 아이의 약속을 다시 끄집어내며 장난스러운 말을 건넸다. 당황해하는 아이의 표정이 재미있어서 자꾸 놀리게 된다. 정색하며 ‘나중에’라고 말하던 아이가 돌연 표정이 바뀐다. 문자를 확인해 보라면서. 핸드폰을 꺼내 보니 돈이 송금되어 있다. 아르바이트로 힘들게 번 돈으로 밥값을 치르겠다면서. 하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술 약속도 많은 아이에게 그날의 밥값은 큰돈이었다. 가끔, 아주 가끔 우리를 놀래는 아이다.
식당을 나오며 ‘글로리아, 잘 먹었어. 딸이 사주니 더 맛있네.’라고 인사했다. 그 말을 하며 또다시 묘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더불어 나와 그의 부모님이 떠올랐다. 그분들의 기분을 알 것 같다. 내가 사 먹는 음식과 자식이 사주는 음식이 왜 다르게 느껴지는지, 왜 더 맛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앞으로 성인으로서 언젠가 독립해 또 다른 인격체로서, 어른으로 살아갈 아이. 함께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 행위가, 아이의 챙김을 받는 순간이 그 어떤 의식보다도 경건하고 귀한 추억이 되는 경험이자 삶의 큰 기쁨이 된다는 것을. 한 번 둥지를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 새와 달리 예전의 둥지로 찾아와 인사하는 인간은 정말 축복받은 존재임을 마음속에 새긴다. ‘I see you’의 말속에 사랑과 이해가 모두 담긴 영화 <아바타>의 대사는 인상적이었다. 현실 속에서 서로를 향해 ‘I am with you’를 외칠 수 있는 관계는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