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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보는 너

by 애니마리아


작년 이맘때쯤, 너의 까까머리가 기억난다.


머리카락이 있던 자리의 흔적만 희미하게 보이던 너의 뒷모습.


어색한 듯, 설렘과 두려움과 복잡한 마음이 교차하던 그때.



언제 가서 어떻게 지내고 오겠냐며 걱정 반, 격려 반의 목소리를 들을 때 '한국 남자들 다 갔다 오는 곳이야. 괜찮아. 까짓것.' 하면서도 이내 '거짓말이지, 이거 다 쇼하는 거지? 몰래카메라 같은데. 참 이 많은 엑스트라 구하느라 다들 힘들었겠네요.' 하며 현실을 부정했던 너, 그 익살스러운 미소 뒤에 가려진 혼란스러운 감정을 우리가 왜 모르겠니.



그랬던 네가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의무를 시작한 지 어느새 일 년이 지났네. 우여곡절 끝에 군대에 입대했지만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배치되고 주말 등 종종 소식을 들려주었지. 네 덕분에 아빠, 엄마, 네 동생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안심하게 지낸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글을 쓰기도 했단다. 어설프고 서투른 표현일지라도 이렇게라도 감사하고 싶었고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으로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하고 싶었어. 관계는 꼭 쌍방으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서 누군가에게 받은 관심과 사랑을 나 또한 누군가에게 주고 싶다는, 베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해를 넘겼지만 작년 말 혼란스러운 나라 상황에 휴가를 나온 너의 모습을 보니 또 한층 성장한 너의 변화를 볼 수 있었어. 삭발에 가까운 머리카락이 꽤 자라 적응한 군인의 헤어스타일로 자리 잡힌 모습은 단지 외모뿐만 아니라 남자가 되어가는, 또 다른 성장을 겪고 있는 어른의 모습 같았거든.



부모가 되어서인지 너의 성장이 뿌듯하고 기특하면서도 가끔은 아쉽고 서운한 감정이 들기도 하는 것 같아. 그렇다고 괴로움을 자아내는 부정적인 기운이라기보다는 삶의 정류장을 하나하나 지나면서 느끼고 받아들여야 하는 자각이라고나 할까. 법적으로는 성인이라 제재를 가할 수도, 요구할 처지도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때로는 생명의 신비와 기쁨을 알게 해 준 너의 어리광을 좀 더 보고 싶기도 하더라고. 인간은 논리와 이성만이 아닌 감정의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리고 부모가 점점 늙어가면서도 자녀가 하룻밤이라도 함께 있다 갔으면 하는 마음도 이해하게 된다. 너를 보면서, 너의 성장을 느끼면서, 너의 독립을 바라보면서.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네가 엄마의 마음을 알아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 휴가 나오자마자 밥 한 번 먹고 이내 친구에게 달려가는 너를 이해하면서도 조금, 아주 조금 뭐랄까, 슬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쁜 것도 아니고 그냥 묘했단다.



며칠 후 부대에 복귀하는 날 내게 내민 선물. 너는 어딘가를 다녀오면 늘 엄마, 아빠에게 작은 선물을 잊지 않았지. 카페인에 민감해진 나머지 편두통에 시달리는 나를 위해 너는 그동안 종종 사 왔던 녹차와 커피를 대신해 다른 선물을 내밀었지. 귀여운 병에 담긴 귤차를. 설탕마저 줄이고 있었지만 아들이 준 달콤한 과일차를 마다할 수는 없었단다. 아들이 준 차를 마시는 날이 바로 '치팅 데이'가 되고 말았어. 그 어떤 비싼 차도 낼 수 없는 맛을 선사하더라고.




이제 7개월 정도 남았어. 네가 중요하고 고결한 의무를 마치기까지.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일어났고 앞으로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늘 너를 응원하고 사랑하고 감사할 거야. 오늘도 네가 준 귤차를 마시며 치팅데이를 보내고 있단다. 너의 마음에 행복해하는 나의 마음이 전달되길 바라며.



울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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