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우연일까, 필연일까.
하얀 눈이 폭설처럼 내렸지만 아름다웠던 날.
설날을 하루 앞둔 설렘이 있었던 날.
가족이 다 모였고 함께 음식을 나눌 생각에, 즐거운 설날을 보내길 바랐던 날.
하지만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사고가 난 날.
빛의 속도가 그보다 빠를까.
순식간에 미끄러져 오른쪽으로 넘어졌지만 일어날 수 없었던 날.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날.
충격인지 마비인지 헷갈리면서도 어떻게든 일어나려 했으나 일어날 수 없던 날.
나의 팔이 부러진 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
2025년 1월 28일.
나의 시간만 멈춘 날.
나의 몸이 고장 난 날.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당시 사고 장면을 못 보고 소식만 들은 사람 가운데 몇몇의 말은 가시처럼 들렸다.
‘좀 조심하지 그랬어!’
걱정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잠시 마음이 불편한 건 사실이다. 조심하지 않아서 넘어질 수도 있지만 낙상 사고가 모두 조심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는 아니다. 차라리 경솔하게 뛰어다니다가 넘어진 거라면 덜 억울할까. 사고가 날 줄 알았다면 더 조심했을까. 정말 내가 조심하지 않아서 생긴 일일까. 어른이 되어서 왜 그리 예민하게 구냐며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올해 전후로 비행기 사고가 심심찮게 들렸다. 그렇다고 모든 사고가 승객들의 부주의로 났다고 일반화하는 말은 억지이지 않나. 세상에 사고가 나길 바라서 사고를 일으킨 사람은 없다. 다치고 싶어서 다친 사람도 없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다. 모종의 특별한 목적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적어도 나는 아프고 싶지 않다. 아픈 사람을 보는 것도 힘들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늙는 것, 죽는 것은 그리 두렵지 않다. 나이 들면서 점점 아픈 게 힘겨울 뿐.
나는 워낙 움직이는 활동을 좋아하지 않고 매사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만큼 몸을 사리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이번 사고는 정말 어이없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많이 속상하다. 잔병치레는 평소에도 워낙 많지만 약으로 그럭저럭 버티며 살고 있었다. 삶의 패턴이 크게 바뀌고 지진인 난 것처럼 심신에 영향이 끼칠 만큼 큰 병치레를 한 건 2021년 코로나에 걸린 때가 마지막이었다. 4년 만에 내 몸은 균형을 잃었고 사지 중 하나가 부러지고 말았다. 한 달이 훌쩍 넘은 지금도 나는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회복 중이지만 최소 일 년간은 몸속에 쇠못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 보호대를 찬 상태로 극심한 통증에 팔 전체를 쓸 수가 없었다. 지금은 손가락과 손목 정도를 쓸 수 있지만 제한된 각도에 아주 짧은 시간만 허락될 뿐이다. 거북이같이 느린 삶이 움직임이 거의 없는 식물처럼 되었다. 감사하게도 조금씩 나아지지만 생각보다 너무 느려 답답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짧게라도 기록을 남기고 싶지만 회복이 느리고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니 무리할 수도 없다. 통증을 참고한다고 해도 박힌 못이 만에 하나 어그러지면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울컥하는 마음을 진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이 넘게 강제로 환자 생활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할 수 있었다. 할 수 있다. 앞으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피해와 불편을 겪고 있는 가족이 있다.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고 나를 돌보며 나의 회복을 돕고 있다.
달팽이, 나무늘보, 굼벵이.
어느 존재가 제일 느릴까. 달팽이나 굼벵이일 듯하지만 포유류를 골라보고 싶다. 나무늘보. 나쁘지 않다. 요즘 나는 나무늘보의 속도로 사는 기분이다. 나무늘보의 속도라도 걸음을 떼 보려 한다. 하루에 단 일 분이라도. 하루 걸렸던 글 하나에 일주일이 걸리더라도. 멈추지 않는 게 중요할 테니. 조금씩 글로 풀어보려고 한다. 음성 기록을 생각해 보았으나 어색하다. 어설프게나마 손가락 끝의 감각으로 글을 쓰고 싶다. 부러진 팔을 위해서라도.
P.S. 부러진 팔아, 미안해. 고마워. 네게 달린 팔과 손을 위해 나무늘보 같은 속도라도 회복을 해 주어서. 내일은 조금만 더 힘을 내주겠니? 너를 위해 더 잘 먹고 더 잘 자고 더 잘 쉬도록 할게. 멀리 떨어져 있지만 너의 친척 두 다리가 걷기 운동을 하며 너를 응원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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