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DUROY 』
"Oh, Mommy. Look! There's the very bear I've always wanted. "
"Not today, dear. I've spent too much already.
Besides, he doesn't look new. He's lost the button to one of his shoulder straps."
from the text of <Corduroy>
완구 백화점에는 온갖 인형이 가득하다. 다양한 인형을 사려는 손님 또한 북적이지만 코듀로이를 사려는 아이는 없다. 어느 날 작은 소녀가 그 앞에 멈추어 코듀로이의 밝은 눈을 들여다보고는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엄마는 어차피 곰인형의 어깨끈을 고정할 단추도 없다면서 매몰차게 거절한다.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가 단추가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코듀로이는 밤이 되어 백화점 불이 다 꺼지면 단추를 찾아보기로 마음먹는데... 코듀로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층까지 가서 단추를 찾을 수 있을까. 밤새 다니는 경비원의 눈을 피할 수나 있을까. 설사 단추를 찾는다고 해도 자신을 원했던 소녀를 다시 만날 수나 있을까.
작가 돈 프리먼(Don Freeman 1908~1978)은 미국의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 만화가이면서 어린이 책의 저자이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고아로 자랐지만 뉴욕으로 건너 가 에칭(부식동판술)을 공부했다. 이후 여러 작품이 정치, 서커스 등의 주제를 담고 있다. 종종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거리와 극장,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 뉴욕의 생생한 현장을 포착하곤 한 그는 1951년부터 어린이를 위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20여 편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 『 CORDUROY 코듀로이』(1968)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1958년 <Flying High Flying Low>로 칼데콧 아너 상을 받았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의 본질은 '마음의 단순함이 아니라 "천진난만함(simplicity)" 그 자체'라는 말을 남겼다.
표현 언어가 다른 동물이나 생명이 없는 존재가 어떤 마법과도 같은 힘이 이끌려 살아나 모험하는 이야기는 동심을 자극하는 강력한 모티브가 되어 왔다.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지만 어른에게도 호소력 있는 고전과 영화가 늘 회자되는 이유는 뭘까. 인간은 상상의 동물, 허구를 생성하여 현실화하는 똑똑한 존재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대왕(The Nutcracker and the Mouse King 1816) by E.T.A. 호프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 in Wonderland 1865) by 루이스 캐
<피노키오의 모험>(Adventures of Pinocchio 1883, 카를로 콜로디)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The Miraculous Journey of Edward Tulane2006) by 케이트 디카밀로 Kate Dicamillo
<토이 스토리>(Toy Story 1995)
<박물관이 살아있다>(Night at the Museum 2006)
상상은 이야기로 태어나고 오랜 세월 전해지다가 책으로, 영화로, 발레로, 또 다른 매체의 예술로 태어났다. 과학의 최첨단을 담당하는 AI도 그 기원은 '이러면 어떨까.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인간의 상상에서 비롯되었을 테니.
19세기 소설의 전성기를 이룬 서양의 동화, 소설부터 현대의 작품, 영화를 보면 아무리 어린 독자와 관객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그 작품들을 창조해 낸 사람은 결국 어른이다. 처음부터 어른인 사람은 없고 누구나 어린 시절을 겪는다. 어린 시절을 지내오면서 많은 동심을 잃기도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많은 어른의 마음 저편에는 자신의 동심이 피어났던 상상의 방이 있을 터이다. 여전히 동심을 유지하는 어른을 보고 다른 어른이 칭하는 말이 있을 정도다.
'피터팬 증후군'
이 말에는 부정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어른이 되어도 성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여전히 어린이가 되기를 원하는 심리상태나 행동을 말한다고 하니 말이다. 책임감이 없고 불안해하며 현실을 도피하려는 이상 행동을 할 때 붙이는 말이라지만 그렇다고 어린이의 모든 면이 부정적이고 사회 부적응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작품은 코듀로이의 엉뚱한 행동과 단추를 찾아 떠나는 모험이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또 다른 축은 소녀가 코듀로이를 대하는 방식이다. 편안하고 멋진 백화점에서 계속 산다면 비록 선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나름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듀로이는 소녀를 잊지 못한다. 애당초 단추를 찾아 위험을 무릅쓴 이유도 자신의 단점을 해결하면 소녀와 다시 만나 함께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정은 어떻게 일어날까. 아니, 이런 거창한 말은 너무 진지하다. 어린 나를 되돌아보자. 세상에 눈을 뜨고 놀이터에서, 거리에서, 혹은 학교에서 만나는 또래를 바라보는 아이를 떠올려 보자. 우리는 상대가 멋있고 흠이 없어야만 좋아하거나 친구가 되고 싶은 것일까. 나보다 상대가 잘나고 훌륭하면 내게는 이익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대는 어떤가. 그보다 못한 나와 어울리고 싶을까. 동일한 잣대로 사람을 본다면 상호적인 교류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똑같은 능력, 똑같은 장점, 똑같은 성격으로 밸런스를 맞추는 관계란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까.
소녀를 만나고 코듀로이는 자신도 몰랐던 부족함을 인식했다. 또한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했는지, 진정 필요한 친구는 어떤 존재였는지 깨닫기도 한다.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마음을 다하는 소녀와 곰인형의 우정 이야기는 추운 겨울에 따뜻한 입김이 되어주는 작품이다. 어린 독자는 물론 따뜻한 감성을 경험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 어린 시절로 다시 여행하고픈 독자에게 추천한다. 옛날, 아주 먼 옛날 소위 '코르덴바지(코르덴 바지)'로 불렸던 옷감이 코듀로이 corduroy라는 것을 알고 읽는다면 더 재미있을 듯하다. 이미 세상사에 피곤하고 실리를 따지는 데 익숙한 어른에게는 한때 자신도 느꼈을 동심을 떠올리는 시간이 될 수도 있으니까.
Corduroy저자돈 프리먼출판 Dial Books발매 1981.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