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하고 몇 시간 동안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뇌와 신체의 일부를 속이는 마취를 통해 큰 수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이후 몇 시간 동안은 강력한 진통제로 뼈에 못이 박힌 것도 그 통증이 얼마나 큰지로 가늠할 수가 없었으니까. 나중에 원장님의 상담 진료로 수술 상태를 알았다.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길게 굵고 기다란 철심이 세로 방향으로 하나 박혔고 그 철심을 고정시키기 위한 세 개의 추가 철심이 가로 방향으로 박혔다. '어떻게 박으셨을까? 망치로? 외과 수술용이겠지만 원장님은 내 어깨를 감싸는 살을 가르고 힘줄을 찢어 뼈에 박는 과정을 수행하셨을 것이다.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회복이 어느 정도 된 후에도 사고 이전의 100퍼센트 상태로 가지 못할 가능성이 다분하고 심지어 통증이 평생 혹은 오랫동안 남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무서운 일이다. 이미 평생 약으로 버텨야 하는 질병(갑상선 저하와 편두통)이 있고 안과(녹내장) 질환, 부인과, 유방외과 쪽 이상이 발견되어 관리 중인데 정형외과까지 추가되었다. 거의 관여하지 않는 의학 분야가 없을 정도로 나의 몸은 문제가 많은 상태가 된 듯하다. 과거의 생각과는 달리 병이 하나, 하나 추가될 때마다 감정이 무뎌지지는 않았다. 늘어나는 한숨과 경제적 부담, 정신적 스트레스 및 우울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다. 살아온 만큼, 아니 살아온 세월 이상으로 살게 되는 상황도 각오해야 하므로. 건강이 한창때만큼 회복되길 바라는 것이 욕심이라는 것쯤은 안다. 끊임없이 운동과 식단, 스트레스 관리 등으로 고통의 정도와 범위를 최대한 줄이거나 속도를 늦추는 데라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요새 유행하는 말, '저속 노화'도 이런 맥락에서 어느 정도 일치하지 않을까 싶다.
진통제를 계속 맞을 수 없었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내게는 진통제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위에 부담을 주어 오심과 구토 증세를 유발하여 정상적인 음식 섭취는 물론 평소에도 속이 뒤집어질듯한 감각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결국 수술 마취약이 사라질 무렵 진통제까지 끊고 몸살 통과 같은 통증을 견뎌야 했다. 차선책으로 주사제나 약을 투여할 수 있었는데 일정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추가로 제공받을 수 없다고 했다. 간이 망가질 만큼 독한 약이라 참을 수밖에 없다고 견디라는 말만 돌아왔다.
그렇게 수술 첫날과 둘째 날은 열병, 몸살, 코로나 백신 주사를 한 대가 아니라 열 대 정도 맞으면 느낄 듯한 아픔으로 끙끙대야 했다. 남편은 내 옆을 지키며 안절부절못하기도 하고 내 고통을 간호사실에 전달하기도 하면서 최대한 나를 돌봤다. 아프면 짜증을 숨기기가 어려운지라 앓는 소리를 제일 많이 들었을 남편에게 가장 미안하다. 수술 후 6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남편은 힘겨운 간병 생활을 하면서도 친절과 다정함, 유머를 잃지 않는다.
일주일간 파란만장한 입원생활을 하고 통원치료를 해도 된다고 해서 퇴원을 했다. 고정식 보호대를 한 달 정도 하고 나면 풀 수 있다는 말에 그 기간만 참으면 다시 평소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생각했다. 전에 오십견으로 왼쪽, 오른쪽 어깨 시술과 물리치료를 하면서도 이렇게 통증이 심하고 가용 범위가 좁을 줄은 몰랐다. 그때와는 또 다른 삶의 장애물이 내 앞에 놓여있을 줄은 몰랐다. 3월에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대학 학기를 맞아 공부까지 틀어지리라고는……. 인생은 한 치도 알 수 없다.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더라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