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 가 파괴된 곳에서도 새로운 세포는 만들어진다. 세포가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뜬금없이 작은방 하나가 생기기도 한다. 그것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어느새 낡은 다리를 다시 단단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텅 빈 공간에 다리를 놓아주기도 하고 어두운 그늘과 습기뿐이던 곳에 빛줄기가 스며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와 같은 범인(凡人)은 표면적인 현상에서 오는 착각을 이기지 못하고 좋은 일에 쉽게 흥분하고 나쁜 일에 한없이 절망하기도 한다.
4주만 지나면 보호대를 풀 수 있다는 수술 원장님의 말에 하루하루를 세며 어서 시간이 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4주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오른손잡이인 나는 당장 숟가락질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주말 동안은 남편이 환자식이 나올 때마다 도와주었다. 밥이나 국은 흘리긴 해도 얼추 왼손으로 먹을 수 있었지만 반찬은 정말 어려웠다. 왼손으로 잘 안된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잘 먹고 잘 회복해야 했으니까. 다시 평일이 되면 남편은 출근해야 해서 마침 방학이던 딸아이가 내 곁을 지켰다. 평소에는 식사 때나 외출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아 거의 대화가 없었다. 하지만 한 손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전반적으로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거의 없었다. 기본적인 생활을 못하니 신체가 건강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나 할까.
화장실은 어떤가. 오른손은 꽁꽁 묶여 고정되어 있고 왼손에는 수액과 진통제를 맞느라 주사가 늘 꽂혀 있다. 화장실에 가더라도 수액 워커를 동반해서 덜덜거리는 소리를 내며 옆 사람을 지나가야 한다. 화장실에 가서도 난관은 기다린다. 옷을 벗고 입을 때도 한 손으로 해야 하기에 여간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아니다. 처음 며칠은 딸아이가 함께 들어와서 옷을 내리고 다시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다소 민망했지만 아이는 고개를 돌리며 '엄마 안 쳐다볼게, 걱정 말고 볼일 봐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식사할 때도 밥이나 국은 내가 먹을 수 있다고 해도 도와주겠다며 이 반찬 저 반찬 등 내 의견을 물으며 떠먹여 주었다. 단 며칠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를 떠올리면 미소를 짓게 된다.
'나이가 들어 어린아이 같아지는 노모가 자식의 봉양을 받는 느낌이란 이런 것일까.'라고 속으로 되뇌기도 했다. 평소 차갑기만 한 얼음공주에게 따뜻한 차 한 잔과 마사지를 받는 기분이라고 할까.
어른이 될수록 오히려 만날 약속 잡기가 힘들지만 입원한 동생을 위해 한걸음에 와준 오빠, 위로와 격려를 하러 찾아와 준 친척들, 첫째와 둘째의 보살핌과 안부, 지인의 따뜻한 죽 선물, 남편의 헌신 등 내게 쏟아진 사랑과 관심, 친절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병원에서 장담한 4주가 지나도 붕대와 보호대는 그대로였다. 6주가 지나니 3주 더 해야 한다고 한다. 통증은 많이 줄었지만 각도가 거의 30도 정도만 올라간다. 집 근처에서 물리치료를 해도 된다고는 했지만 2주에서 4주 간격으로 다시 점검을 위해 병원에 가야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에 다니는 생활에 지치기도 하지만 하루하루를 소중히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침에 나가 병원 일정을 마치고 오니 오후 2시가 넘기도 한다. 때늦은 점심을 먹고 밀린 수업과 공부를 하려 하니 체력이 달린다. 그나마 없던 근육도 쓰지를 못해 더욱 빠졌고 쉽게 지친다. 눕고 싶고 쉬고 싶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기도 하다. 왜 나는 이리도 자꾸 아픈 걸까 소리치고 싶기도 하다.
심호흡을 하고 사고와 뒷수습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것을 생각한다. 아이의 츤데레 가득한 말과 행동을 기억하고 흥분을 가라앉힌다. 덕분에 아이와 택시를 타며 병원 나들이를 해서 좋지 않았냐고 스스로를 달랜다. 하나의 문이 고장 났으나 다른 문이 열려 새로운 모험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다른 사랑을 받지 않았는가.
삶은 마냥 좋기만 한 것도 마냥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좋은 일 뒤에 나쁜 일이 올 수도 있고 나쁜 일은 좋은 일로 연결되는 또 다른 창구가 되기도 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절감할 때면 더욱 그렇다.
낙상 사고는 내 몸에 지진처럼 내부를 뒤흔들고 치명적인 갈래 길처럼 금을 남겼지만 쩍 갈라진 땅을 지나 새로운 물길을 만나게도 해 주었다. 사막의 먼지처럼 삭막한 모래만 가득했던 관계의 광야에서 오아시스를 만나기도 했다. 함께 물을 마시기도 하고 그곳의 나무 그늘 아래서 함께 쉬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무엇보다 소통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신세를 지고 도움을 받아 자존심도 상하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 덕에 우리는 침묵을 깨고 대화를 하기도 하고 평범한 일상의 관계를 맺기도 했으니까. 내게 왜 자꾸 새로운 병이나 상처가 이토록 자주 생기나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겸손해야 함을 느낀다. 자칫 데면데면해지는 건강에 대한 소홀함을 인식한다. 보이지 않는 신기루를 쫓기보다 내가 가진 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고 감사하고 아껴야 할지에 집중하게 된다.
금이 간다는 것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금이 간 사이를 붙이고 메꾸는 강력한 접착제를 만들 수 있는 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그대로 된다는 것을, 금이 있어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역사의 증거가 된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새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