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1970년 겨울에 태어난 한강은 1993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을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 당선을 시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및 <소년이 온다>의 작품을 썼고 젊은 예술가상, 이상문학상, 인터내셔널 부커 상을 비롯 2024년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경하는 2014년 여름 어느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낸 작가다. 그녀는 이상한 꿈을 꾼다. 외진 곳에서 흩날리는 눈발 속에 나무 사이를 걷고 있지만 그곳은 아름다운 바닷가가 아니라 오래전 봉분으로 가득한 무덤가이다. 알 수 없는 시기에 미스터리한 사연으로 시체가 묻혀 있지만 밀려드는 바닷물에 금방이라도 쓸려갈 것만 같은 상황. 당황스러운 이 꿈을 꾼 지 사 년이 흐른 어느 겨울날, 친구 인선의 문자를 받는다. 손가락이 잘려 병원에 입원한 인선을 찾아가고 경하는 제주도에 당장 가 달라는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데……
말해 무엇하랴. 한강의 작품이다. 약 십 년 전 <채식주의자>를 읽었을 때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흔히 금기시된 장면이 나올 때 예술은 정말 어렵다고, 나의 얄팍한 문학 감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고만 생각했다. 폭력은 이루어졌고 트라우마가 남긴 이상 현상은 그럴듯했으며 주인공의 아픔에 공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독자로서 소설 속에서 현상과 사건의 나열이 거친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졌다. 결론이 무엇인지 작가가 바라는 독자의 상상력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과연 이게 비극인지, 열린 결말인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무엇을 보고 싶게 만든 건지 파악이 잘되지 않아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채식주의자>부터 <소년이 온다>, 이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2024년 판)까지 작가의 이 대표작들에는 각기 다른 배경과 역사가 숨어 있다는 평을 이미 듣고 읽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자>는 여성, 개인에 작용하는 폭력과 강요를, <소년이 온다>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가장 최근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2021년)는 훨씬 이전의 사건 '제주 4.3 사건'이 중요한 모티브이다.
시기도, 내용도 다르지만 한강의 작품을 하나하나 읽다 보니 작은 공통점이 느껴진다. 단순히 아픔이나 어두운 분위기, 시적인 감성만이 아니다. 소재 면에서 볼 때 작가는 새와 빛을 특별히 등장시키고 죽음과 이별, 만남의 고리 안에서 맴돌게 하는 기법을 즐기는 듯하다. 비록 <채식주의자>에서 새는 주인공 영혜의 잔인한 입질로 피를 흘리지만 매우 강렬한 호소력을 남기는 장면으로 한 챕터를 장식한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이 새로 형상화되는 듯한 이미지를 구축하며 무겁고 슬픈 감정을 자아낸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다른 분위기, 유쾌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이별을 감지할 찰나 다시 '짜잔!'하고 마술 모자에서 나온 듯한 새가 등장한다. 잔인할 수 있는 눈길과 눈발이 새하얀 솜사탕처럼 보이게 하는 환상을 느끼게 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새는 작품에서 경하가 애당초 제주행을 가야 하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새들이라고 생각했다. 흰 깃털을 가진 수만 마리 새들이 수평선에 바싹 붙어 날고 있다고.
하지만 새가 아니다. 먼바다 위의 눈구름을 강풍이 잠시 흩어놓은 것이다. 그 사이로 떨어진 햇빛에 눈송이들이 빛나는 것이다. 해수면이 반사한 빛이 거기 곱절로 더해져, 흰 새들의 길고 찬란한 띠가 바다 위로 쓸려 다니는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거다.
59쪽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인선과 경하의 이야기 전개 사이로 인선 어머니의 과거와 역사가 겹쳐지며 복잡한 세상으로 휩쓸리는 바람에 어느 순간부터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혹은 꿈인지, 아니면 상상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논리를 떠나 왜 이런 장면이, 서술을 했는지 빠져서 따라가다 보면 시간의 흐름과 현실성은 잠시 제쳐두게 된다. 때로는 새, '너는 죽었잖아'(179쪽)의 중얼거림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고 "여기서 잠들면 안 되는데"라고 속삭이는 인선의 말을 듣다가도 '서울의 병원에 있는 인선이 어떻게 제주도에 있는 경하에게 말을 걸지? 손도 멀쩡하고'라는 생각을 하며 미스터리 소설 속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마치 영화 <식스 센스(<The Sixth Sense>, 1999년)의 후반을 보듯 경하의 죽음과 인선의 죽음, 앵무새의 죽음에 대한 가능성과 의심에 혼돈의 절정을 야기하는 것이다. 이는 자칫 작품이 또다시 어렵게 느껴지는 지점일 수 있다.
'이 소설은 결말이 뭐지'하는 애매모호함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마찬가지다. 등장인물의 경험과 순간의 심정은 알겠는데 줄거리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시작과 끝이 있는 직선이 아니라 어디서부터 시작하더라도 끝이 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가는 기분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노벨상의 여부를 떠나서 아직도 환상의 세계를 떠다니는 기분이다. 사지선다형 답안 작성에 익숙하고 기승전결을 어느 정도 맞춘 글에 익숙한 탓일까. 장을 묵혀두듯 다시 읽어보면 좀 낫지 않을까 싶다. 읽는 시기에 따라 일어나는 감정과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달라지듯 잠시 책을 묵혀두고 나를 발효시켜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 보아야겠다. 이 작품은 서론에서 결론까지 짜인 구성의 논리나 블록버스터 영화의 화려한 전개나 상업성과는 꽤 동떨어져 보인다. 오히려 작가가 담담하게 자신의 시선을 담아 약하지만 끈질긴 빛으로 뭔가를 비춰주는 독립영화, 흑백영화의 감성이 가득하다.
아직 나의 이해력은 부족하다는 변명으로 책과 이별하기보다는 작가가 진정 말하고 싶은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았다. 결말은 애매하나 무엇이 가장 좋았는지, 어떤 부분이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는지. 그리고 불사조처럼 살아 날아오른 앵무새 같은 작은 보석을 찾아냈다. 폭력은 무섭다. 피는 잔인하다. 때로는 고통이 싫어 역사를 마주하기보다는 외면이라는 쉬운 길을 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의지에 상관없이 이별을 겪어야 할 때가 있다. 진정 이별을 하기 전에 꽁꽁 묶인 매듭을 풀려는 마음을 보았다. 살리려는 마음, 자신의 피를 주어서라도 누군가를 살리려는 생명력을 목격했다. 그것은 생명과의 연결,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작별하지 않겠다는 삶의 의지이며 희망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영혼이 남아있는 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새의 날갯짓으로, 종이컵 안에서 소심하게 흔들리는 촛불처럼. 돌로 변할지도 모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는 여인처럼. 이는 앞서 읽은 두 작품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이별을 그리고,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일어날 것만 같은 기적이 담긴 유화 같은 작품이다. 작품을 읽고 나면 다 돌아간 영사기가 다시 흑백 필름을 보여주며 종료의 여운을 남기는 듯했다. 글 사이로 표현된 역사와 관계, 죽음, 이별의 이미지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새 나타난 작가가 조용한 미소를 띠며 새를 날린다. 새는 낮게 주위를 날다가 안갯속으로 날아간다. 눈이 오면 다시 희미한 빛을 타고 날아올 테니 슬퍼하지 말라고 속삭임의 메아리를 보내면서.
작별하지 않는다 저자한강출판문학동네발매 2021.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