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을 읽다 보니 한 줄 건너 한 줄이 고비다. 우리말도 그렇지만 영어의 만연체는 특히 내용 파악이 어렵다. 한국어에는 접속사가 없어도 어미, 조사의 사용만으로도 뜻이 확연히 달라지거나 인과 관계와 같은 요소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영어에서조차 좀처럼 보기 힘든 만연체에 세미콜론, 콜론, 대시와 같은 부호와 콤마는 오히려 어디까지 잇고 끊어서 내용을 연결해야 할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Where I Lived, and What I lived For" from Walden 1854(<월든>의 '나는 어디에서 살았고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중에서
문명사회의 거센 파도 가운데 사람은 구름, 폭풍우, 가라앉는 모래와 수많은 것들을 고려하며 살아가야 한다. 추측항법으로 _____... 성공하는 사람이라면 정말이지 뛰어난 계산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말에도 안은문장, 안긴문장 구조가 있듯, 영어에도 같은 주어와 동사에 걸리는 문장 구조를 얼마나 잘 파악하느냐가 정확하고도 매끄러운 번역에 도움이 된다. 이 부분을 포함하여 해석이 막힐 때마다 잠시 고민을 하지만 도저히 파악이 안 될 때가 있다. 그것도 자주. 특히 이 소로의 작품은 커다란 도전이다. 교재에 수록되지 않았다면 미루고 또 미루었을 글이다.
처음에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삽입 어구인지, 주 동사를 어디까지 적용할지, 그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문제가 무엇이고 어떤 부분을 풀어야 할지조차 모른다면 시작점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전혀 다른 길로 가기도 한다.
첫 번째 방법은 교재의 주석을 힌트 삼아 추측해 보는 것이다. 중간 밑줄 친 부분이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유연함과 문장 구사력이 부족해서인지 if만 보면 무조건 '~라면'이라는 조건문을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우리말은 같은 뜻도 어미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조금 다른 표현을 써서 결국 같은 의미로 도달하기도 한다. 후자의 방법을 쓰는 이유는 똑같은 표현 반복으로 문장이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기 위해서다.
두 번째는 강의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교수님의 설명을 듣거나 질문을 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막상 강의에서는 교수님께서 이 부분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시고 주된 내용만 의역해서 넘어가셨다. 왜 그렇게 해석해야 하는지가 관건인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해석과 문장의 문법 구조가 뭔가 맞지 않았다. 설상가상 질문을 할 수 있는 란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고민!
and와 콤마(,)가 병렬될수록 이 구절의 진짜 주어와 동사를 잃어버리곤 한다. a man has to live에 걸린다면 go to the bottom과 not make his port at all의 해석이 어색했다. 앞의 not founder(실패하지 않기 위해, 실패하지 않으려면)은 그나마 말이 되었다. 하지만 '바닥을 가려면?', 전혀 맥락이 맞지 않는데? 같은 동사를 적용하는 게 아닌가? not 조차 생략된 것인가? 그게 맞는 걸까? 그러면 그다음 and 옆의 not이 있는 구절은 뭐지? 여기는 not이 있네? 뭔가 일관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오타나 인쇄 오류가 아닌지 의심도 해 보았다. 가끔 상상은 나를 더 함정에 빠뜨리기도 한다. 지름길은커녕 나 스스로 울창한 숲 속 미로로 빠져들게 하니까.
이때야말로 번역본, 해답을 보고 싶은 욕구가 가장 클 때다. 이 정도 고민해 보았으면 되었다고. 번역본이 아니라 '월든'원서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장은 구하기 힘드니 참을 수밖에.
한 번 더 시도해 보고 싶은 방법이 있었다. 세 번째 방법은 AI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무료 버전은 대개 번역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절대 모른다고는 안 하고 핑계를 댄다.' 자신은 번역가가 아니다, 버전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등등. 그렇다고 파파고와 같은 툴은 정확도나 자연스러움이 아직 좀 부족한 듯 보였다.
그동안 변했을 수도 있으니 챗 GPT에 질문을 넣어 보았다. 질문이 좋아야 하는데, 제대로 된 질문이어야 답도 제대로 얻을 수 있을 텐데 고민이 되었다. 왠지 길어지는 질문, 나의 가려운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선,
**if he would not make his port at all의 뜻을 물었다. 여기서 나의 실수는 앞에 would not이 나오니 뒤에 나온 not make his port at all의 not을 적지 않은 것이다. 같은 not이라고 생각해서다. 다르다고 생각했더라도 비문으로 여기고 다시 뺐을 것이다. if he would not not make his port at all이 되기 때문에 현대 영어 문장에서 보기 드문 문장 구조로 보였을 테니.
이에 대한 GPT의 대답은 우선 내가 하려는 질문을 다시 정리해 주었다. 사람도 뭔가 질문이 어설플 때 상대가 '그러니까 이런 뜻으로 이러이러한 게 궁금하신 거죠?'라고 하지 않나. 마치 나의 답답한 부분을 이해한다는 듯이. 내가 긍정의 뜻을 보이자 더욱 상세히 설명해 주었고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직역과 의역을 정리해 주었다.
시간이 흘러 이상하게 여긴 부분 not not처럼 이런 문장 구조가 맞냐고 재차 물으니 우선 '좋은 질문!(Good question!'이라며 칭찬 같은 여유를 부린다. 단순히 not의 어색함 여부만 따지는 게 아니라 왜 그런 구조가 되었으며 첫 번째 not의 의미와 두 번째 not의 뜻이 다르며 어떻게 다른지 설명한 후 표면적으로 보이는 어색함이 오해임을 밝혀주었다. 즉 주절의 would not은 의지나 과거형이 아니라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람'이라는 뜻이다. 더불어 두 번째 not의 자연스러운 번역은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다른 형태로 if he woud not fail to make his port와 같은 문장이라는 것이다. fail to가 not으로 표현되었으니 그 이면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내게는 문법에서 보지 못한 비문으로 보일 수밖에.
그제야 번역서를 보고 또 다른 차이를 발견하며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독자를 생각해서인지 의역을 넘어 윤역(潤譯)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거친 바다'가 '험한 바다'로, ' 가라앉는 모래'가 우리에게 익숙한' 암초'로 번역되어 있었다. 이들에 대한 원어는 각각 chopping sea와 quicksand인데 사전적인 뜻은 삼각파, 혹은 역량(파도의 역류적 현상)이고 quicksand는 유사(늪처럼 빠지는 모래)이다. 그대로 번역문에 넣으면 어렵고 드문 한자 및 어휘 감각에 가독성이 떨어질 수도 있어 이런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최종적으로 나만의 정리를 해 보았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바닥에 가라앉지 않으려면, 혹여 항구에 도착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사람은 구름, 폭풍우, 가라앉는 모래와 수많은 것들을 고려하며 살아가야 한다. )
이런 고민의 과정을 거치면서 해석 문제만 해결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내어 최대한 생각하고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중요함은 당연하다. 또한 AI와의 협업이 왜 중요하고 어떤 식으로 잘 질문하며 이용해야 하는지 조금 더 이해한 시간이었다. 알면서 어찌할지 모르던 차에 짧게나마 체험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한 편으로는 이러한 고비를 잘 넘기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를 대하는 학생의 자세에 따라 실력 향상 여부가 결정되는 것처럼. 잘 안 풀렸을 때 해답지를 보고 바로 넘어가느냐,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풀어내거나. 후자의 경우가 가장 좋지만 이 구절만큼은 최대한 풀어보고 고민한 후 그래도 안 될 경우 번역본을 보기로 했다. 이 문장에만 학기 내내 붙들고 있을 수는 없으므로. 시험과 효율도 생각해야 하며 공부해야 할 다른 내용도 있으니까. 완전히 내 힘으로 답을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바로 해답을 보지 않고 고민의 시간을 들여 노력했다는 것에 위안을 얻고 싶다. 이렇게 조금씩 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선구자를 이해하는 일이 그리 쉽겠는가. 그만의 언어로 되어 있는 생각을.
Walden저자헨리 데이비드 소로출판 Editorium발매 2021.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