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의 축복이 나를 보고 인사한다. 내가 시집에 문을 두드렸는데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반긴다.
"시 앞에서 만날 당신을 미리 축복합니다."
/여는 글 앞에서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헌사」(獻詞, dedication) 부분은 '○○에게'나 '○○에게 바칩니다' 따위의 문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작고 아름다운 나태주의 동시수업>을 읽으려고 책을 꺼낼 때마다 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앙증맞은 중절모에 귀여운 미소를 짓는 표정의 시인의 표지를 피할 수 없다. 나태주 님의 헌사는 더욱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시를 읽어보려는 나를 축복한다니! 기독교인 여부를 떠나 잘 알지 못하는 상대조차 배려하는 선한 마음, 포근한 시인, 좋은 사람이 느껴진다.
<희랍어 시간>이라는 한강 작가님의 소설을 읽은 후 조금 쉬어 가고 싶었다. 시는 내게 늘 어려운 퍼즐 같지만 나태주 시인의 소개라면 징검다리로 건너듯 하나하나 발을 디디며 시라는 개울을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깊은 강조차 개울처럼 나의 마음을 두려움에서 설렘으로 바꿔줄 것 같았다.
동화는 주로 어린이를 위한 책이지만 때로는 어른을 위한 문학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이 책 또한 어른에게 아침의 첫 물 같은 감성을 선사한다. 이는 그의 '여는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의 경험을 솔직히 말하면서 시에 대한 벽을 허물어 준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나의 삶이 행복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를 읽을 때만은 거짓말처럼 행복했습니다"
여는 글에서
오늘 이 책을 조금 읽다가 익숙하지 않은 시인의 낯선 시를 하나 읽었다.
"저녁별(송찬호)
서쪽 하늘에
저녁 일찍
별 하나 떴다
깜깜한 저녁이
어떻게 오나 보려고
집집마다 불이
어떻게 켜지나 보려고"
<작고 아름다운 나태주의 동시수업> 저녁별 중에서/84쪽
시인도, 시도 내겐 낯설지만 주요 소재 '별'만큼은 무척 친근하다. 소개된 시 옆에 덧붙인 나민애 교수님의 감상평처럼 '별은 하늘의 눈이며 시인들은 유독 별을 좋아한다'는 말이 와닿는다. 사람들은 태곳적부터 별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별을 잘 볼 수 없는 현대에도 별에 대한 사랑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별이 빛나는 밤에', 고흐
'별', 알퐁스 도테
'별 헤는 밤' 윤동주
'별에서 온 그대' SBS 드라마
'별이 진다네' , 여행 스케치
화가, 소설가, 시인과 같은 작가, 드라마, 노래는 물론 '어린 왕자'와 같은 고전부터 현대 소설 'PROJECT HAIL MARY'까지 분야와 장르를 넘나든다. 많은 사람이 누군가 소중한 존재가 세상을 떠나면 '하늘의 별'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말한다. 별이 주는 상징성은 너무나 강력해서 한 민족의 정체성(유태인을 구분하기 위한 표식)이 되기도 했다. 국기에 표기(미국 등) 되기도 한다. 문학과는 멀어 보이는 과학자들도 일반인의 염원을 대변하는 듯 별을 향해 우주로 나아간다. 우주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한다. 수많은 별을 밤에만 볼 수 있지만 낮에도 우리는 늘 별과 함께 한다. 아주 특별한 별, 태양과 함께.
별, 한 음절의 단어가 마음속에 수많은 별을 터트리고 언젠가 들었던 시를 그립게 만든다. 그 시의 한 연을 마디마디 퍼즐처럼 맞추어 본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의 별 헤는 밤중에"
왠지 힘든 날, 서글픈 날, 조용히 있고 싶은 날 작은 별 하나에 갈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 별을 찾아가는 길에 달 속에서 방아를 찧는 토끼도 만날 것 같고, 장미에 물을 주는 어린 왕자에게 인사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대들은 별이 어떤 의미인가. 그리움인가, 사랑인가, 그냥 무중력 상태로 떠 있는 돌덩어리에 불과한가. 가슴속에 고유한 별이 있으면 좋겠다. 아무리 세상이 정전이 되고 어둠이 온다 해도 사라지지 않는 빛이 나는 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