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장례미사가 있었다. 성 베드로 성당에서 오전 10시, 한국 시각으로는 오후 5시라고 들었다. 마침 그날은 우리 부부가 명동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기로 한 날이었다.
6시에 시작하는 미사 시간에 좀 빠듯하게 도착했다. 의자 너머 뒷문까지 신자들로 꽉 찬 성전이 살짝 열린 문 사이로 보였다. 이미 입당 성가가 울리고 있었고 설마 들어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어 불안했다. 안내하시는 자매님의 눈과 아슬아슬하게 마주친 순간 감사하게도 문을 열어주셨다.
매년 한 번 정도 명동 성당에 가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리가 꽉 차고 들어가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심 놀랐다. 남편 안드레아는 아마 교황님의 선종(善終)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한국 신자뿐만 아니라 한국에 여행을 온 타국의 가톨릭 신자가 많이 보였다. 이탈리아, 필리핀,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온 듯한 신자들인 듯했다. 신부님도 성체성사를 주실 때 스페인어 혹은 이탈리아어로 성체를 주시거나 라틴어를 중간에 쓰시는 것 같았다.
평화의 인사 예식 전후로 미사 중에 보통 두 번 이상은 무릎을 꿇는다. 다리가 아프거나 노령인 경우 앉아서 하는 것이 허용되기도 하지만 그날은 겨우 들어가 맨 뒤의 벽에 붙어 서서 미사에 참여할 수밖에 없어서 그러한 예식은 감히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외국에서 온 한 신자분은 옆에 배낭 가방을 살포시 놓고는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한참 기도를 드리며 성호를 그었다. 타국에서 교황님의 선종 소식을 듣고 불편한 공간에서 미사를 드리면서도 신앙을 지키는 모습은 배우고 싶을 정도로 의연해 보였다. 혹여라도 주변의 신자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구석에 가서 기도를 올리는 모습은 배려, 그 자체였다.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어인데도 가톨릭의 기본 미사 전례에 따라 집중하는 신자를 감지하며 나의 가벼운 신앙을 돌아보기도 하였다.
집에 돌아와 미사 주보를 보니 교황님을 기리는 기도문과 함께 약력과 그동안의 봉사, 약력이 가득 담겨 있었다. '주님, 프란치스코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라는 문구 위로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환한 웃음으로 어딘가를 바라보시는 교황님, 화려한 제의가 아닌 하얗고 소박한 옷차림과 검소하고 단순한 무늬의 십자가가 눈에 띄었다. 어떻게든 전쟁을 막고 평화와 화해를 세상에 가져오고자 노력하신 분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주보의 또 다른 면에 소개된 교황님의 유언 한 구절을 다시 짚어본다.
"무덤은 지면 아래 있어야 하며, 단순하고 특별한 장식 없이 'Franciscus(프란시스코)'라는 이름만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긴 연휴의 하루를 보내며 안드레아와 나는 교황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두 교황(The Two Popes, 2019'을 보았다. 흠 하나 없을 것 같은 두 분의 과거와 현재(영화 속에서)에서 그분들도 실수하고 죄를 지었던 인간이었음을 드러내고 고백하는 모습을 보았다. 서로 다른 의견으로 격렬한 논쟁을 벌이면서도 인간 대 인간으로 사제 대 또 다른 사제로 우정과 존경을 나누는 언행을 보며 함께 웃고 울고 싶은 마음이 교차되었다.
교리와 원칙, 전통의 고수를 책임으로 생각하는 베네딕토 교황님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지나치게 포용적인 프란치스코 추기경(당시) 님은 괴짜이자 반항아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 때문에 한 가지를 보고도 한 사람은 '타협'이라 부르고 또 한 사람은 '변화'라 칭하며 첨예한 대립의 각을 세우기도 했다.
13세기 단 한 번의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고 전례 없던 교황직 사임을 결심한 베네딕토 교황님은 젊은 시절 최선을 다해 사제들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프란치스코 추기경님의 고백을 듣고 절대자의 대리자로서 용서와 사랑으로 아픔을 치유하였다. 이내 자신은 그저 학자로서 따르기만 했을 뿐 부족한 사제이자 타인의 죄를 알고도 냉철하게 행동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용서를 청하는 용기를 보여주셨다. 인간으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겸손된 자로서 용서를 구하는 두 분의 진면목을 표현한 모습이 바로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볼 수 있는 명장면이라 생각한다.
추기경직을 내려놓고자 허락을 구하러 온 프란치스코 추기경님의 청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며 친구가 된 베네딕토 교황님, 설득하러 왔지만 설득을 당하고 헤어지는 날 베네딕토 교황님께 아르헨티나의 탱고 춤을 가르치며 유쾌한 작별을 하신 프란치스코 추기경님과의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새로운 교황이 되신 후 프란치스코 교황님으로서 '눈물을 흘려야 한다면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하소서'라며 올리는 기도는 마치 세상의 가난한 이들이 슬픈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순교하는 삶을 살겠다고 서약하는 듯보였다.
"베네딕토 교황님, 저라면 혼자 (외롭게) 식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황님의 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
"충분치 않았습니다. 저의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가톨릭은 세상에 (엄격한) 벽을 세우기만 하면 안 됩니다.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두 교황> 중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대사
영화 곳곳에 반영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대사도 좋았지만 그분의 소탈한 성격과 유머 감각, 살가운 언행으로 두껍고 멀게만 보였던 가톨릭의 벽이 허물어진 듯했다. 아픔의 역사 속에서 상처 입은 인간을 위해 일하면서도 탱고와 축구를 사랑하고 주변의 친구와 음식 나눔을 즐겼던 교황님의 일생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가난한 자를 위해 살겠다는 서약을 끝까지 지키신 정신이 튼튼한 다리가 되어 수많은 다리가 곳곳에 세워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