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가 나를 건드릴 때(희랍어 시간을 되돌아보며 1)

by 애니마리아


* 부제: <희랍어 시간>을 읽다가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글쓰기 조언을 곱씹어 볼 때가 있다. 간결한 글쓰기의 조언으로 적극성이 느껴지는 문구.


스티븐 킹' 만약 글을 쓰고 싶다면 많이 읽고 많이 써라',


잭 런던 '영감이 찾아오길 기다려선 안된다. 잡으러 쫓아다녀야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모든 초안은 끔찍하다'



그런가 하면 글쓰기에 대한 내면과 철학이 깃든 말도 있다.


'글쓰기는 마음을 진지하게 다루는 일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깊게 들여다보라.'(버지니아 울프)


'쓰는 과정이 고통스럽고 내가 왜 이런 글을 쓰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고통 속에서 진실을 찾아낸다'(프란츠 카프카)



작가마다 상반된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가독성을 중시해서 독자의 이해를 염두에 두고 쉽게 쓰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쓰고 싶은 대로 우선 쓰라고 하는 작가도 있다. 쓰기는 뇌의 출력 과정으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소화를 시키는 사람이 있으면 소화는커녕 싫어하고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같은 문구를 읽어도 반응은 다를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한강 작가님의 <희랍어 시간>은 처음부터 낯선 언어의 반복이었다. 단어 하나하나는 낯설지 않지만 조합이 낯설었다. 전통과 관례에서 벗어난 요리법을 접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의사와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단체생활의 자극은 그녀의 침묵에 균열을 내지 못했다. 오히려 더 밝고 진해진 정적이 어둑한 항아리 같은 몸을 채웠다.

16쪽/희랍어 시간



주인공이 17살 때 느닷없이 찾아온 함구증(작품 속에서는 '그것'이라고 표현되었다) 같은 증세로 말을 못 하게 된 사연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부분이다. 단문이 많은 단락이었지만 무슨 말인지 한참 생각하거나 앞뒤 맥락을 다시 따져보는 시간이 초반부터 나를 붙잡았다. 어려워서도 잘 못 읽을 때도 있지만 쉬워도 수수께끼처럼 문장 사이의 의미를 짐작하느라 멈추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한 번, 두 번, 여러 번 읽는다.



생각해 보니 일상생활에서 이런 표현을 잘하지 않는다는 걸 인식했다. '침묵이 깨진다'가 아니라 '균열'이라니. '정적이 가득하다'가 아니라 '정적이 몸을 채운다'라니. 낯설지만 왠지 공감이 가는 소슬한 여운이 느껴진다. 편한 에세이처럼 서술했다면 '단체생활이 그녀의 침묵을 깨뜨리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밝은 분위기마저 항아리 속처럼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독자가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했겠지만 평범해 보였을 것이다. 소설은 산문 문학인데 소설 속에 시의 은유와 이미지를 담아 작가만의 언어로 전환한 듯싶다. 단어 하나하나 고를 때 수없이 고민하고 오랜 시간을 들이는 정성이 느껴졌다.



"... 평범한 불어 단어가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퇴화된 기관을 기억하듯 무심코 언어를 기억하지 않았다면."/17쪽 <희랍어 시간>



자세히, 꽃을 들여다보듯 읽는 요즘 나를 건드리는 단어들이 있다. 표현이 있고 그 자리에서 생각이 퍼져나간다. 발걸음을 멈추고 시간을 멈춘 듯 느려지지만 언어의 건드림이 있어 생각하고 글을 쓰고 다시 읽을 수 있는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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