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ROJECT HAIL MARY
*워밍업
『 PROJECT HAIL MARY 』를 읽다가
오늘은 낯선 단어가 나와도 그냥 넘기리라 다짐한다.
자신은 없다.
나는 나의 독서 스타일을 알기에.
아니나 다를까.
두 단락을 넘기지 못하고 나의 습관으로 이내 빠져든다.
한 단어가 자극한다
chain, chain, chain.
오늘 주인공 라일랜드와 외계인 친구 로키를 괴롭히는
최대의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가 될지도 모르는
'사슬 만들기'
이 단순하고 장난스러운 단어는 그들에게 중요한 과제다.
머리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내게도 필요한 덕목이다. 아침 독서의 루틴 속에
성과만을 생각하면 절망할 수도 있는 독서량
30분에 단 2쪽을 읽었지만 나는 많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조사하고 메모했다.
내가 치타였다면 절망스러운 속도였겠지.
내가 달팽이였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 달린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
여기 내가 생각하며 끄적인 개념을 정리해 보자.
처음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이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양과 수학적 계산이었다. 로키의 행성 Arid의 대기를 추출하기 위해 특정 고도로 진입해야 한다. 문제는 아리드 행성의 대기와 압력은 지구와 달라서 무작정 내려갈 수가 없었다. 라일랜드의 우주선은 자칫 추락하며 다 타버릴 수가 있기에 이들은 10km 정도 아래로 내릴 수 있는 줄을 만들기로 한다.' 제노나이트 xenonite'라는 물질로 만든 사슬을 연결시켜야 한다.
소설에서 나오는 사슬 1개의 길이는 5cm이다. 목표치는 10km이니 얼핏 생각해도 어마어마한 양을 만들어 연결해야 한다. 연결 개수도 문제지만 시간도 문제다. 라일랜드가 계산한 바로는 최소 200,000개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천재 외계인 친구 로키가 담당했다. 하지만 두 사람(로키는 애매하다), 아니 두 생명체가 함께 만들어도 하루에 8시간씩 꼬박 2주를 작업해야 한다. 상상만 해도 아찔한 한편 웃프기 그지없다. 두 지성체가 쪼그리고 앉아 마치 부업하듯 반복작업하는 모습이라니. 그것도 절체절명의 시간, 지구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때에 사슬을 만드는데 2주간 종일 사슬을 만들고 연결해야 한다. 하지만 꼭 필요한 작업이다. 지구가 죽게 만드는 아스트로파지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아리드 행성의 대기를 분석해야 하니까.
계산기를 꺼내 들고 200,000x0.05mx0.001을 두드리니 2000개라는 숫자가 나왔다. 한 시간에 라일랜드와 로키는 2000개의 사슬을 연결해야 한다.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 숫자를 맞추기 위해 한 시간에 몇 개를 연결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몇 개월이 걸릴 텐데 왜 이러고 있나 싶다가도 어느새 빠져든다. 너드를 따라 분석하고 발견하는 즐거움에 허우적대는 중년이라니!
물리학과 수학으로만 가득하다면 이 책을 읽다 말았을 텐데 오늘도 재미있고 유용한 표현을 발견했다.
Engineering isn't my forte(p.309)
forte는 음악에서 나온 말로'세게, 강하게'라는 뜻이 있다. 사전에 여기서 파생된 뜻인 듯한 의미가 하나 더 있었다. '강점'이다. 직역하면 공학은 '내 강점이 아니다'로 자신보다 공학적 기술과 재능이 뛰어난 외계인 로키를 두고 라일랜드가 한 말이다. 학교식 문법으로 영작했다면 'I'm not good at engineering'이라고 안전하고 확실한 문형으로 했을 것 같다. 이 표현 하나만으로도 colloquial English( 실생활 구어체 영어)를 익혔다는 기쁨이 느껴졌다. 응용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은가. 가령,
Cooking is not my forte. 요리는 내 분야가 아니야.
Small talk is his forte. 스몰토크는 그의 강점이야.
상대적으로 재미는 없었지만 이후에 나온 단락에서 쏟아진 용어들도 함께 복습해 본다.
perforate 구멍을 내다
actuator 작동장치
misalign 어긋나다
gasket 마개 장치
status quo 현재 상황
여기서도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세 번째 단어 misalign의 경우다. 사전에는 확실히 나오지 않지만 문장 구조상(to deliberately misalign) 동사로 추정되었다. AI의 도움을 받으니 실제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라고 한다. 특히 기계, 공학, 의학 및 우주 공학에서 배열 및 정렬이 어긋나는 상황에 쓰인다고 했다. 사전에는 이 단어와 연관된 어휘 misalignment(조정 불량)가 나오는데 과학자들이 이 단어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신조어가 아닐까 싶다. 읽기만 해도 이리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해도가 필요한데 이 책의 번역가님이 존경스럽다. 사실 읽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부분이다.
라일랜드는 외계인 로키를 천재로 여기지만 그도 과학 지식이 뛰어난 박사이다. 타고난 재능과 성격도 있겠지만 결국 이들과 같은 천재들도 수많은 프로젝트와 목표를 향해 기나긴 시간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노력했을 것이다. 수많은 수작업을 하며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지난한 시간을 견뎠을 것이다. 때로는 내가 좀 더 젊었을 때 뭔가를 시작하지 못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늦긴 늦었다고 스스로 속삭이게 된다. 그래서 더욱 이들의 가상 이야기가 내게 힘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인지하면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지구의 운명을 위해 수작업을 마다하지 않는 두 생명체를 보며 울고 웃는 나를 발견한다.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인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자고 스스로를 토닥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