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글로리아(Gloria) 너의 축일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다가왔어. 너는 세속의 생일이 더 좋겠지만 엄마에게는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영명축일(name day: 세례명의 근원이 된 성인의 축일) 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한 날이란다. 오래전 엄마는 너와 네 오빠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자 아빠와 엄마에게 주어진 성스러운 은총이라 여겼기에 세례를 받게 했단다. 미사 중에 큰 소리로 성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던 글로리아. 너는 언제부터인가 미사를, 하느님을, 성당을 멀리하게 되었지.
너희(글로리아, 요한) 안에 신앙심이 말라버린 것도 나의 부족 같아 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단다. 특히 일 년에 두 번 판공성사(고해성사) 표가 나올 때 바로 옆에 있지만 전해주지 못하는 슬픔을 너는 알 수 있을까. 신앙은 강요할 수 없는 것이지만 엄마의 기도와 노력, 실천이 부족함을 실감하는 일을 매년 반복하고 있단다. 고해성사의 1번은 몇 년째 같은 내용으로 시작해.
"신부님, 저의 첫 번째 죄는 주님을 멀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시 신앙심을 키워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5월 5일 외할머니 댁에 가면서 '어린이날 뭐 없나요'라고 농담을 건네는 너에게 스무 살이 되었다고 어른 대접 원하는 아이가 뭘 바라냐는 농담으로 대응했었지. 몸만 컸지 마음은 아직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빨리 자랐으면 하는 바람과 그대로 오랫동안 나의 아이로 머물러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교차하더라. 한편으로 네게 아직 아이 같은 순수함이 있으니 예수님이 곧 엄마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 같은 희망을 느끼기도 해.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예수님은 아이와 같은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말씀 말이야.
삼 일 후 어버이날이 되었어. 큰 것을 바란 건 아니지만 작은 인사 정도는 바랐던 것 같아. 선물보다는 진심 어린 인사를, 꽃보다는 짧은 편지라도.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꾸어 먹었단다. 아직 마음을 놓지 못하는 엄마, 아빠 곁에서 여전히 씩씩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말이야. 5월 8일 오전이 조용하게 지나고 오후가 되어 돌연 가족 카톡 방에 올라온 문자. '부모님께 감사한다'는 귀여운 이모티콘이었어. 거창한 인사는 아무래도 쑥스러웠을 거야. 그래도 그렇게라도 마음을 전해주어서 고맙고 기특했단다.
글로리아, 그거 아니? 딸 앞에서 아빠만 바보가 되는 게 아니더라고. 엄마도 때로는 일방적인 짝사랑을 하면서 바보가 되더라. 서운하면서도 돌아서면 너의 시선을 바라는, 너와의 추억을 바라는 바보. 그게 엄마의 운명인가 봐.
그리고 요즘 마냥 어리기만 보였던 네가 조금씩 엄마의 언어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노력하는 모습에 감사할 뿐이야. 평소의 모습과 다르게 엄마의 온도에 맞추어 차분히 엄마에게 말을 하는 모습에서 네가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것을 느껴.
알고 있니. 요새 엄마는 아침마다 화분에 물을 주며 기도를 하고 있어. 부활절 기간에 고해성사를 보았는데 신부님께서 주신 보속이야. 멀어진 너와 요한을 걱정하니까 신부님께서 내게 숙제를 주시더라. 집에 식물이 있다면 매일 물을 주며 그 앞에서 기도를 드려보라고. 모든 것은 때가 있으니 인내하며 주님께 청하다 보면 잘 될 거라고. 진심 어린 말씀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
오늘도 너를 생각하며, 네 오빠를 생각하며 기도한단다. 화분에 물을 주며 주모송을 외우거나 바람, 희망을 말하기도 하고 수호천사에게 너희를 보호해 달라며 빌기도 해. 엄마 대신 보디가드를 해달라고. 쑥쑥 자라는 푸른 잎처럼 너희 안에 신앙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게 해 달라고. 무엇보다도 너희들이 잠시 멀리하고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 느끼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한단다. 다시 말하지만 주님과 멀어진 게 엄마의 부족 같아. 그래서 무조건 바라지는 않아. 때가 되면 너희 속에 심어진 씨앗이 다시 깨어나 싹을 틔워 선한 사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리라 믿거든.
글로리아, 나약하고 부족한 엄마의 딸로 태어나 주어 고맙고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길 바라. 가끔은 너와 깊은 대화, 아니 소소한 대화라도 나누고 싶기도 해. 뭐든 때가 있을 테니 우리도 언젠가 허심탄회하게 대하는 그런 순간이 오겠지. 친구 같은 부모는 위험하다는 말도 있지만 부모와 자식은 바라는 대로만 이루어지는 관계는 아닌 것 같아. 한동안 네가 나의 아기였고 언젠가 엄마가 네게 아기 같은 존재가 될 텐데 그전에 친구 같은 시절이 많으면 좋겠다. 네 기준에 엄마는 재미없는 사람이고 취미도 다르지만 너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더라고. 생각해 보면 엄마도 독립하기 전까지는 외할머니께 미주알고주알 수다 떠는 걸 좋아했었어. 외할머니도 엄마를 생각하며 그리워하신 순간이 많겠지. 올해도 멋진 순간을 상상하며 엄마는 네게 또 편지를 쓴단다. 답장 없는 편지를.
너를 생각하며
너를 그리워하며
너를 짝사랑하지만
너의 날개가 되어주고 싶은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