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두드린 단어, 너도밤나무

by 애니마리아


책을 읽다 보면 중심 소재나 주제에 상관없이 한 표현, 하나의 단어가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 누가 보아도 주인공은 이 사람인데 나의 시선을 끄는 사람은 따로 저편에서 홀로 서 있거나 묵묵히 주인공을 빛나게 해주는 조연인 것처럼.



얼마 전에 읽은 몰리 뱅(MOLLY BANG)의 작품 『 When Sophie Gets Angry-Really, Really Angry... 』에서도 그런 단어가 있었다. 아동서는 상대적으로 성인 원서에 비해 단어가 쉽다는 인식이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표현 자체가 아이의 인지와 경험치, 사용 어휘에 맞춰 각색되는 경우가 흔하니까. 하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라고 어른이 늘 100% 이해하거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가 있고 외국어든 모국어든 상관이 없다.



오늘 내 마음을 두드린 단어, 정확히 말해 궁금하게 만든 단어는 beech tree이다. 사전에는 '너도밤나무'라는 말 외에 특별한 설명이 없다. 이 나무에 대해 한국어로도 잘 쓰지 않고 생김새조차 잘 모르니 내겐 생소한 외계어처럼 들렸다. 시험에서 자주 보는 용어도 아니고, 실생활에서 유용한 회화에도 잘 등장하지 않으니 그림책이나 아동서를 읽을 때 종종 정보를 검색하게 된다.



너도밤나무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식물에 대해 문외한이다. 매년 보는데도 철쭉과 진달래를 구분하지 못해 남편에게 교육을 받는다. 중학교 시절이었던가. 우연히 번역본으로 외국 소설(아마 추리소설인 듯싶다)을 읽다가 한두 번 마주친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편견인지 무관심에서 온 무지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너도밤나무가 외래종이라고 생각했다. 이리도 무지하다니!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스스로 평화를 되찾는 이야기를 읽으며 '너도밤나무'는 다시 내 마음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특이했으나 지나쳤던 단어. 다시 만난 단어는 다시 나를 동심의 세계로 이끈 것과는 별개로 하나의 작품을 통해 '너도밤나무, 너를 알고 싶다'는 감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She comes to the old beech tree. She climbs.'

본문 중에서


화가 머리끝까지 난 소녀, 소피는 한참을 달리다가 너도밤나무를 발견하고 그 나무에 올라간다. 파릇파릇하게 잎이 달린 다른 젊고 화려한 나무도 많지만 늙고 가지만 사방으로 뻗어 무거워 보이는 너도밤나무를 오른 이유는 뭘까. 작가가 표현한 너도밤나무는 매우 크면서도 세월의 흔적을 다 담은 듯 구부러져 있다. 하지만 소피를 마주한 나무는 그 어떤 다른 나무들보다 환한 미소로 팔 같은 가지를 뻗으며 포옹하려는 듯 보인다. 마치 '왜 그러니, 소피. 무슨 일이야. 기분이 많이 안 좋은가 보네. 어서 내게로 오렴. 이 할머니 나무가 안아줄게.'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게 소피는 너도밤나무의 높은 가지에 올라앉아 한아름 끌어안고 바람을 느끼고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다.



책을 읽고 난 후, 소피는 사랑하는 가족을 다시 만났지만 나는 너도밤나무와 헤어지기 아쉬웠다. 문득 너도밤나무는 왜 너도밤나무일까. 참 재미있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래종치고는 무척 한국의 고유어스러운 정감이 느껴졌으니까.



알고 보니 원산지는 북반구 온대 지역으로 유럽에도 흔히 있지만 동아시아, 북아메리카까지 자생하는 식물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정확한 어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밤나무. 너도밤나무?'라고 물은 나무가 있어 너도밤나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전설은 한번 웃고 넘기기에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어원설처럼 들린다.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너도밤나무는 왜 너도밤나무일까>(박시화 글/박종호 그림)을 발견했다. 미리보기로 살짝 엿보니 너도밤나무에 얽힌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었다. 이 또한 율곡선생과 관련된 민담으로 상당히 흥미로웠다. 1000그루의 밤나무 중에 2그루가 죽었고 한 그루가 '나도 밤나무예요'라고 했고 나머지 한 그루를 향해 '너도밤나무잖아'라고 해서 너도밤나무가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너도밤나무의 근원을 찾다가 나도밤나무라는 존재도 알게 되어 놀람도, 기쁨도 두 배가 되었다. 순수우리말도 예쁜 말이 많지만 한민족의 조어 방식에 담긴 해학이 정겹게 느껴져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밤나무의 꽃말은 화려함, 정의, 공평, 포근한 사랑이다. 알알이 박힌 밤송이를 열매로 맺는 멋진 나무, 밤나무처럼 세상을 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나무와 너도밤나무는 둘 다 참나뭇과 이고 나도밤나무는 자작나무과라고 한다. 나도밤나무든 너도밤나무든 밤나무는 아니지만 밤나무와 같은 꿈을 공유하는 나무가 많이 퍼졌으면 좋겠다.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화재 소식도 줄어들면 좋겠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 끈질긴 생명력이 있는 나무들이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살리는 나무들이 많이 번성하면 좋겠다. 나처럼 오랜 세월 지구를 지켜 온 기특한 나무들이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어렸던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에 대한 책을 함께 읽고 싶다. 이들 나무에 대해 엄마의 무지함에 대해서도 함께 웃고 함께 어원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어 보기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너도사과나무? 나도사과나무. 너도파랑이? 나도파랑이' 하며 이름 짓기 놀이를 해도 좋을 것 같다. 추억은 사진으로만 남기는 것이 아닐 테니. 뭔가를 이루는 수단이 아닌 책 자체를 사랑하는 독서 여행 가족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책에서 비롯된 마음속 두드림은 오랫동안 남아 말이 되고 글이 되어 교감을 나누고 '너도'와 '나도'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니.



서로를 닮고자 하는 마음은 아름다우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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