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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40분, 그만의 루틴이 시작되었다

by 애니마리아


"

생일 축하해.

고마워.

밥 해야겠다.

더 자.

아니야, 할 거야.

"



지난 주말은 내 생일이었다. 주말의 단잠을 마다하고 남편은 올해도 예외 없이 부엌으로 향한다. 내게 먹일 밥과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23 년째 연간 루틴을 계속해 오고 있다.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나의 생일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챙기는 사람.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를 나의 수호천사, 안드레아(세례명)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여전히 신기하고 여전히 사랑스럽고 여전히 웃기다.



내가 남편의 입장이라면 참 귀찮을 것 같다. 매년 그렇지만 올해는 유난히 내 생일을 특별히 챙겨주고 기억해 주는 사람이 많다. 수십 명까지는 아니지만 꾸준히 기억해 주는 소수가 있어 늘 감사하다. 시쳇말로 '내가 뭐라고' 하는 생각에 과분한 사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유일한 친언니는 내 이런 말에 '그것도 네가 타고난 복'이라며 좋은 마음을 전해주었다.



사랑은 원래 주고받아야 더욱 기쁘고 행복한 일인데, 내가 받는 만큼 하지 되돌려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뭔가 신세를 진 것 같아 부담을 느끼기도 하지만 잊기 전에 그들을 위해 짧게나마 화살기도를 드린다.



극 I의 성격(MBTI 중 INFJ)인 나는 아이들에게도 고맙고 미안하다. 가끔은 E 타입의 아이들에게 맞추어 주지 못하고 금방 에너지가 방전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하기에. 어느새 성인이 된 두 아이는 올해도 따뜻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첫째는 생일 축하 전화와 꽃 사

둘째는 아르바이트 가기 전 건네는 생일 축하 인사와 유산균

남편은 온갖 정성이 가득 들어간 생일상

시어머님은 축하 인사

시댁 아가씨는 귀여운 가방

형님은 기프트 쿠폰

큰오빠는 귀한 떡

언니는 견과류 카스텔라

지인과 친척들의 축하 인사

아흔이 다 되신 엄마가 보내 준 용돈

나는 하루하루 고속으로 늙어가는데

중년의 막내는 아직도 아기처럼 보이나 보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나에게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고


부족하지만 있는 그대로 인연을 이어가는 그들이 있어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 고독해도 외롭지 않은 것은 물질이 오가는 행위와 선물보다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행복과 의식 때문이 아닐까.



어느 지인의 말처럼 그래도 누군가에게 주는 기쁨이 크다 하니 무엇이든 줄 수 있는 삶을 고민해 보려 한다.



그 무엇이건 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바라지 않고 베푸는 사람이 되는 것은 꼭 물질로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진심 어린 말 한마디, 누군가를 위해 문을 열어주고 버티어 주는 것, 들어주는 것, 좀 거슬려도 이해해 주는 것. 갈등이 생길 때 마음을 풀어달라고 기도하는 것, 때로는 내 용돈으로 간식 선물을 건네는 것.



이 모든 것을 생각하게 하고 사랑을 알게 해 준 나의 안드레아의 배려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때로는 우울하고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 때마다 나는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해 준 모든 이에게도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사랑 못지않게 감사라는 말은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래도 매일 감사를 하려고 한다. 낙담과 불안이 끊이지 않고 어느새 불평과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세상에서 감사는 그 무엇보다 필요한 덕목이니까. 감사를 함으로써 나 자신은 물론 이 세상은 가치 있는 삶, 의미 있는 삶이 존재함을 깨달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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