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아직은 안 울었어

네가 담긴 상자

by 애니마리아

네가 담긴 상자를 받았어. 허리 디스크 통증이 악화돼 통화한 다음 날에 왔더라.

까까머리를 가려야 한다며 입대 날 썼던 검은색 모자, 검은색 후드 티, 회색 바지, 네가 늘 신고 다니던 스니커즈 신발, 그리고 너의 편지, 네 마음이 담긴 편지를 발견했어.


마음이 뭉클했지만 눈물은 안 나오더라.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건 뭐지 하는 마음도 들었지. 여기서 '울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엄마는 원래 슬픈 장면만 보면 눈물, 콧물 다 흘리는 수도꼭지인데 말이지. 누구는 입대일 아들이 뒷모습을 보이며 훈련소로 가는 길, 그 장면에서 울었다 하고, 어떤 이는 민간인으로서 착용한 옷가지 상자를 받아 보고 울먹였다는데.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아빠 앞에서 또 울지는 않아서 창피한 상황은 면했어. 함께 택배 상자를 열었거든. 군대용 상자인지 귀여운 캐릭터와 함께 육군 표시 문구 등 상자만 한참 돌려 본 기억이 나. 하지만 억지로 울고 싶지는 않아. 그동안 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서인지 아직까지는 엄마도 잘 견디고 있단다^^.


몸도 안 좋은데 네가 소지품을 넣으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야심 차게 각오하고 들어갔으나 마음 같지 않아서 속상할 수도 있고 서러울 수도 있겠지.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이 지난한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는 너의 노력을 믿는단다.


너의 편지, 상자 저편 구석에 접고 또 접어 단짝 친구에게 보내듯 단단히 고정해 넣은 너의 편지를 펼칠 때 얼마나 떨리던지. 아빠는 옆에서 '오, 전보다 글씨 잘 썼네!' 하며 쿨하게 넘어가고 별로 궁금하지 않은 척했지만 엄마는 일부러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어. 글씨도 글씨지만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억지로 시켰을 때 쓴 어버이날 편지에서도 보지 못한 양의 내용이 확 눈에 띄어서지. 기껏해야 두세 줄짜리 메모와 같은 편지를 받은 게 다였는데 이번에 네가 한자, 한자 꼭꼭 눌러가며 적은 내용으로 한 장이 꽉 채워져 있더라. 엄마, 아빠가 아닌 '어머니, 아버지'라는 경어부터가 낯설면서도 군기가 바짝 든 너의 모습이 상상이 돼서 미소가 지어지더라고.


예정된 일정대로라면 이 글을 올리는 시점은 너의 훈련이 중반을 훨씬 넘은 때가 되겠네. 농담으로 BTS의 RM은 같은 훈련소에서 선배로 훈련을 잘 마쳤으니 열심히 하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네. 지금은 그저 네가 건강하게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무사히 훈련을 잘 마치고 진짜 군인으로서 임무를 잘 수행해 내길 바랄 뿐이야. 엄마가 여러 번 건강을 잃다 보니 내가 무엇을 하든, 무엇을 꿈꾸든 건강이 받쳐주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이룰 수 없더라고. 이루는 건 고사하고 의욕도 없어지고 심리적으로 힘들어져서 헤어 나오기가 어렵더라고. 그래서 엄마는 종종 확언 일기에 이렇게 적곤 해.

'몸과 마음, 외면과 내면이 늘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그래서 먹기 싫은 영양가 높은 식품도 먹으려고 도전하고 있고 운동도 꾸준히 하려고 해.


감사하게도 동생뻘 동기들과 새 친구들이 서로 잘 어울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안심이 되고 감사하고 뿌듯하더라. 엄마는 평생 느끼지 못할 '전우애'의 씨앗이겠지? 힘들 때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될 테고 말이야.


네가 이 글을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이 순간 또한 기억하려 한다. 잘 지내줘서 고맙고 정성 어린 편지도 감사해. 오늘도 이 글을 쓰기 전에 네 손편지를 다이어리에 붙여 놓고 한 번 더 어루만졌단다.

사랑한다, 아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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