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퇴소식이 뭐길래

by 애니마리아


일찍 자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늦어도 새벽 6시 30분에 출발 예정이었지만 더 일찍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세수하고 옷매무새만 챙긴다면 30분 전에만 일어나도 충분했겠지만 새벽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었다. 바로 초밥을 만드는 것. 며칠 전 통화할 때 아이가 먹고 싶다고 말한 메뉴였다. 김밥이나 다른 음식에 비해서 만들기가 간단했지만 그래도 밥을 최대한 늦게 해야 나름 신선도와 맛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혹여나 늦잠 잘까 봐 걱정이 되어 5시 반으로 알람을 설정해 놓았지만 4시가 되니 나는 무의식에서 의식의 상태가 되었다. 그 전날 취침 시간 또한 평소와 달랐다. 대개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잠드는 경우가 많은데 희희 한 게 잠이 오질 않았다. 결국 자정이 거의 다 되어 잠이 든 것 같다. 7시간 내외로 수면을 취하는 나는 그 이하게 되면 다음 날이 힘든 경우가 많았다. 편두통이 심해지거나 몸이 나른해지고 무거워지면서 무슨 일을 해도 집중이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몰아서 다른 날 더 자게 되어 생체리듬이 깨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 몸이 알아서 긴장하고 각성한 상태가 되니 그에 따라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부족한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일어나 무엇을 먼저 할까 생각했다. 밥은 예약을 해 두었으니 바로 초밥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화장실을 다녀와도 시간이 꽤 남아 있어서 평소에 하던 루틴 몇 가지를 하기로 했다. 일기장을 펴고 메모를 한 다음 오늘 일정을 잠시 생각하고 책을 읽었다. 어서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자꾸 시계를 보게 되었고 결국 책을 덮고 조금 이른 시간에 먹을거리를 준비하기로 했다. 아직 자고 있는 안드레아가 깰까 봐 조심조심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향했다.



조금만 준비하라고 했지만 다른 집처럼 고기나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어서 초밥 키트를 뜯어 치즈도 넣고 배도 깎아서 따로 담기도 했다. 대개는 요거트와 같은 간단한 메뉴로 아침을 해결했기에 시간과 정성이 조금 더 필요한 도시락을 싸는 상황이 어색하기까지 했다. 군대를 가기 전에도 아이는 자취하며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밥을 챙겨줄 일이 한동안 없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을 식당을 예약했기에 이것을 먹을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간식처럼 조금이라도 먹이고 싶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이런 호들갑을 떨게 된 것 같았다.



6시가 되어 졸린 눈으로 일어나 씻으러 가는 안드레아를 보니 문득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운전을 해야 하니 더 자라고도 말할 수도 없었다. 설 명절이 있어서 4주가 아닌 5주 후 퇴소식이 거행되어 안드레아는 평일이지만 휴가를 하루 내야 했다. 퇴소식은 논산 훈련소에서 오전 11시에 예정되어 있었고 서너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지만 훨씬 일찍 출발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지방에서 올라오는 아이의 여자친구를 중간에서 만나 함께 가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물론 안드레아도 끔찍이 생각하는 아이의 친구가 혹여나 힘들까 봐 몇 주 전에 KTX 표를 예매해서 보내주었다. 혼자 오려면 여러 번 갈아타야 하고 초행길이라 힘들 것이기에 천안역에서 만나 차에 태우고 함께 훈련소로 가기로 했다.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 허둥지둥 나온 우리 부부는 천안에서 아이의 소중한 친구를 만났다. 우리와 두 번째 만남이지만 그 아이의 입장에서 얼마나 긴장되고 불편할 수도 있는 자리인지 짐작만 할 뿐이었으나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물어보니 나처럼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고 남자친구에게 줄 선물, 꽃다발 등을 잔뜩 들고 우리에게 달려오는 모습이 짠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에고, 네가 고생이 많다. 추운데 새벽부터 낯선 곳에 가야 하고."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곳에서도 한참을 더 가야 하는데 괜히 어색할까 봐 이것저것 물었던 기억이 난다. 인사치레이긴 했지만 오는데 힘들지는 않았는지, 잠은 제대로 잤는지, 요즘 남자친구를 보내고 어찌 지내는지 등등. 나는 소위 스몰 토크를 잘 못하는데 안드레아가 워낙 살가운 성격이라 대화가 거의 끊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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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훈련소에 가니 식이 거행될 때까지 거의 50여 분이 남아 있었다. 나는 또 긴장이 돼서 그런가 화장실을 자꾸 갔고 밖이 추워서 아이의 여자친구와 구내 베이커리에 잠시 들어갔다. 좁은 장소에 사람이 엄청 많아서 앉을 수는 없었지만 잠시 몸을 녹일 수 있었다.



퇴소식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고 우리는 겨우 찾은 자리에서 아이를 찾아보았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안드레아가 가장 먼저 아이를 알아보고 핸드폰 화면으로 알려주었다. 한 달 전보다 얼굴이 많이 까매지고 살이 빠져 있었다. 허리 통증과 만성 기침으로 훈련을 좀 덜했을 텐데도 힘들었는지 핼쑥해진 모습이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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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대장을 한다고 슬며시 내미는 휘장^^신기했다.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 등을 했던 것 같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옆에서 안드레아가 큰 소리로 따라 부르던 '군가'였다. 원래 교가나 성가, 광복절 노래와 같은 기념 노래 가사를 잘 외우는 것을 알았지만 훈련병들이 부르는 군가까지 큰소리로 따라 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늘 생각하지만 어쩜 몇십 년 지났는데 안드레아는 아직도 군가 가사를 기억하는지 신기했다.



정신없이 식이 끝나고 달려가 훈련병 가족에게 끌어안는 시간이 허락되었다. 안드레아는 아이가 내민 태극기 휘장을 팔 옆에 붙여주었는데 거꾸로 붙였다고 아이에게 한 소리 들었다. 아이의 여자친구가 쭈뼛쭈뼛 인사하길래 내가 '좀 안아줘라. 힘들게 왔는데. 얼마나 보고 싶었겠니?'라고 했더니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친구를 확 끌어안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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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집에 가서 식사를 하는 내내 아이는 너무 맛있다며 잘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식당 안은 모두 군인과 그 가족들로 꽉 차있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사장님이 아이를 주라며 육군 스티커가 붙어 있는 가스활명수를 건넸다. 작은 음료수지만 그 마음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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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새벽부터 조금씩 내리는 비가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세찬 비가 내리며 바람도 불었다. 4시 전에는 복귀해야 한다고 해서 3시에 출발할 계획을 세우고 근처 카페를 찾았다. 두 시간 정도밖에는 여유가 없어서 우리 부부는 아이와 여자친구에게 함께 있을 기회를 주기 위해 그곳에 남겨두고 산책하고 온다고 말한 뒤 나왔다. 평화로운 실내와 대비해 춥고 축축한 길을 대하기에 망설여지긴 했지만 그게 도리인 듯싶었다.^^ 손발이 찬 나를 위해 안드레아는 연신 수다를 떨며 근처 출렁다리가 있으니 한 바퀴 돌고 오자고 했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아쉬워하는 연인의 표정을 다시 보며 이제 다시 가야 할 시간임을 알렸다. 우리 네 사람은 함께 차를 타고 지정된 훈련소 실내 인사 장소로 향했고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아이를 보냈다. 실내 체육관 같은 곳이었는데 교관이 가운데로 모인 훈련병들에게 마지막으로 부모님을 향해 새해 절을 하게 시켰다. 마음이 잠시 울컥하긴 했지만 이번에도 울지 않고 잘 참았다. 옆을 보니 아이 여자친구의 눈물샘이 그만 터져버렸다. '음, 나도 울어야 하나?' 싶었지만 그냥 미소로 달래주었다.



다시 아이의 친구를 태우고 천안역으로 데려다주고 집에 오니 밤 9시가 거의 다 되었다. 이제 아이는 후방 교육으로 대전으로 가서 다시 한 달간 특수차량 운전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군인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한 단계 한 단계 노력해 가는 아이가 고맙고 기특했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는 부모의 마음을 다시 느낄 줄 몰랐다. 그래도 힘들다고 엄마, 아빠는 불침번 안 서서 좋겠다고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책임을 다하려는 그 마음과 행동을 보면 군대 가기 싫다고 한 아이가 정말 맞나 싶기도 하다.



배불러서 아무것도 못 먹겠다고 했지만 서운해할 내 기분을 생각해서 하나 맛보겠다며 초밥 하나를 집어먹는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드러났는지 엄마 컨디션 괜찮냐고 되묻는 아이. 오늘도 나는 그 모든 것에 감사하고 아이를 위해 기도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말이 줄어든 나를 보며 안드레아가 말했다.



"오늘 저녁으로 내가 남은 초밥 다 먹을게."



비까지 내리는 밤하늘은 어두움 자체였지만 그리 외롭지 않았다. 마음속에 잔잔한 등불이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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