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보쟁이 엄마의 뒤척임
아이가 훈련소에 간 지 3주 차에 접어든 어느 날 평일에 갑자기 전화가 왔다. 늦은 밤 시간인 데다가 주말도 아니어서 조금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아빠, 엄마! 나 지금 너무 아파서 의무실에 누워있어요. 아침에 훈련받다가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해져서 중간에 멈춰야 했는데 오늘 벌써 두 번째예요. 아무래도 디스크가 터진 것 같아. 너무 아파요."
"아니, 뭐라고? 저를 어째?"
훈련병은 평일에는 전화를 할 수가 없다. 정상적인 경우 주말에 한 시간 정도 통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전혀 예상치 못한 전화에 놀랐는데 아이의 디스크 증세가 악화돼 누워있다고 하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이는 평소 만성 역류성 식도염에 목까지 쉬어 통화 목소리가 더욱 듣기 거북했다.
신검을 받을 때 3등급이 나왔다. 듣기로는 남편이 군대를 갈 때만 해도 3급은 현역으로 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데 요즘은 4급부터가 보충역이나 다른 쪽으로 심사가 나온다고 했다. 저출산 및 인구 감소의 영향일 듯싶었다. 가끔 허리 통증이 있어 저리거나 불편한 것은 있었지만 약과 물리치료로 간간히 조절하고 있었다. 그래도 막상 입대 영장이 나오자 아이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겠다며 의연히 준비하고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누구나 가는 곳이니 엄마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렇게 급작스러운 통증으로 훈련에 차질이 생겼고 본인도 생각지 못한 긴장과 두려움에 휩싸여 스스로도 참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우선은 아이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부모이기에 아이가 괜한 소리를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훈련소에 가기 전날에도 이제는 가야 할 때라며, 남들 다 가는 곳이라고 오히려 친척들 앞에서 웃어 보이던 아이였다. 스피커 폰으로 통화를 하다가 남편이 물었다.
"그런데 방금 뜬 번호는 네 전화번호가 아닌데, 부대 번호니?"
"네, 분대장님이 부모님께 상황을 알려드리라고 배려해 주셨어요. 오래 통화는 못해요."
"그렇구나, 아. 어떡하니? 걱정되지만 지금 당장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군대도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아까 네가 말한 것처럼 날이 밝으면 좀 더 큰 병원이나 관련 시설에서 검사나 치료를 해 줄 거야. 그때까지 많이 힘들고 답답하겠지만 주시는 약 먹고 조심하고 있으렴. 아빠도 이런 경우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 내일 알아볼게."
옆에서 들으면서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나 또한 당황스러웠지만 남편의 말에 애써 위로의 말을 건넸다. 무리하지 말고 우선은 쉬고 있으라고. 아이는 울먹이며 그 부분은 자기도 알고 있으며 그저 부모님 목소리 한 번 듣고 싶었다고 말하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아이가 어릴 때처럼 무작정 껴안고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는 상황, 아이의 고통에 나의 마음도 아려왔지만 국가의 부름을 받고 간 아이와 군의 보살핌을 믿어야 한다는 양가감정이 마음속에서 일렁였다. 한편으로 긁어 부스럼일 수도 있는 생각에 이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특별히 전화로 소식을 전하게 해 준 아이의 상관 장병에게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이럴수록 차분하게 믿고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다 진정되지는 않았다.
그날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기억도 안 나지만 뭔가 뒤숭숭한 꿈을 꾸고 깨어나보니 새벽 4시도 되지 않았다. 이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할 뿐인 나, 우환에 금방 흔들리는 나는 그저 범인(凡人)에 불과했다. 문득 도마 안중근의 재소자 시절과 그의 어머니가 보냈다는 편지의 내용을 떠올렸다. 십자가의 아들을 지켜보았던 성모 마리아, 의연하게 아들의 선택을 믿고 자랑스러워하며 당당하게 운명을 맞이하라고 말했던 안중근 의사 어머니의 편지를 다시 한번 찾아보았다. 마음이 무너지지만 그 마음을 부여잡고 의연하게 편지를 써냈을 그분의 어머니께 감탄했는데 나는 과연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싶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중략)
조 마리아, 그분의 천주교 세례명도 '마리아'였다. 도마 안중근의 도마는 열 두 제자의 한 명이었던 '토마스'에서 왔다고 한다. 처음 이 편지글을 접했을 때의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세례명만 같을 뿐 도저히 조 마리아 님처럼 이런 마음도, 이런 말도 할 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물론 내 아이의 상황은 안중근 의사와의 경우와 완전히 다르다. 비유하는 것 자체가 과장이고 오지랖일지도 모르겠다. 어리석은 나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아이 앞에서 호들갑 떨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 엄마로서 중심을 잡고 싶다. 그래야 아이가 덜 불안해할 것 같아서다. 다음에 통화를 하게 되면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나는 오늘도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의 고통이 사그라지게 해달라고 지극히 인간적인 기도. 고난과 고통을 맞이해야 신을 찾는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염치없었지만 한 어머니로서 솔직한 나의 심정을 고하고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야, 힘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