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명동성당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우리는 잠시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사계절 중에 봄만큼 사람들의 환영을 받는 때가 있을까. 매년 반복되는 계절이지만 유난히 봄이 설레는 것은 푸릇푸릇한 풀이 돋아나고 피어날 예쁜 꽃을 보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스산한 나뭇가지만 보고 있다가 만개한 생명을 바라보면 마치 자연의 부활을 보는 듯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세월을 역행할 수 없기에 매년 젊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는 식물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매년 더위가 빨리, 강하게 오는 만큼 개화의 시기도 빨라진다. 개나리를 시작으로 분홍빛의 복숭아꽃을 보면 이내 벚꽃을 볼 생각에 설렌다. 짧고 굵은 벚꽃 시기가 지날 무렵 라일락, 목련으로 잠시 아쉬움을 달래면 화려한 철쭉이 새로운 파티를 여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얀 뭉치가 마치 쌀밥과 밀가루를 섞은 듯한 형상으로 핀 듯한 조팝나무, 이팝나무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면 어서 아카시아의 달콤한 향기를 찾게 되고 어느새 붉은 장미를 기다리며 여름을 맞이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저 기다리면 알아서 자신의 때를 알고 피어날 텐데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은 인간으로서의 욕심을 느끼고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그렇게 길가에 핀 꽃과 나무에 대해 말하던 중 남편 안드레아가 제안했다.
“우리 남양주 성지 성당에 다녀올까?”
그 한마디에 우리의 일정이 다시 세워졌다. 남양주 성지는 희한하게 늘 가고 싶은 곳 리스트에 올려놓으면서도 쉽게 가지 못했던 곳이다. 비가 오거나 다른 일정이 생기거나 혹은 그날의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시간이 애매해서 자꾸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하지만 지인의 추천도 있었고 나도 성지순례하는 마음으로 꼭 한 번 가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남양주 성지는 그동안 가본 다른 성지와 다른 면이 있었다. 성당의 건물을 향해 가는 길은 마치 거대한 미술관 같은 건축물을 답사하러 가는 여정 같았다.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 두 기둥 사이에 여러 종이 일렬로 매달려 있고 동시에 두 기둥을 연결하는 형상이 인상적이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 자체가 매우 웅장한 순례였고 자연의 위대함을 걸어가는 미약한 생명의 발걸음이었다.
바람과 빛의 움직임까지 고려한 성당 건물과 조명으로 가득한 하나의 예술 작품 속을 들어가는 것 같았다. 특히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계단을 걸어가는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인공의 빛이 계단에서 새어 나오고 천장의 유리와 구조물을 뚫고 비치는 가운데 계단 하나하나 오를 때의 기분을 어떻게 형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종의 압도라고 하기에는 따뜻하고 포근했고 천국의 계단이라고 하기에는 나의 허물이 너무 부끄러웠다.
돌아오는 길에 유현준 건축가의 남양주 성당에 대한 고찰과 감상평을 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모성지 대성당을 순교지 이상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분은 이곳이 순교지이자 치유의 공간임은 물론 그 자체로 예술성(마리오 보타 스위스 건축가의 설계)을 지니므로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다녀올 만한 곳이라며 추천하셨다.
붉은 벽돌 하나하나에 장인 정신과 신앙의 증거가 남아 있는 곳, 그 안에는 다른 성당과 달리 성전에는 복음에 나오는 중요한 두 가지 그림이 걸려있다.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님 잉태하는 소식을 듣고 받아들이는 장면과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과 마지막을 함께 하는 장면이다.
계절이 바뀌며 자기만의 시간에 다른 꽃이 피듯 나의 개화를 소망할 때, 나도 꽃들처럼 때맞추어 매년 피어나고 싶을 때 피부과 병원이 아닌 자연을 거닐어보는 건 어떨까. 그곳이 성지이든 절이든, 집 근처의 작은 공원이든 상관없다. 가까이 가서 보고 향기를 맡고 감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시간은 조금 느리게 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