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weet Orange Tree)
아마 '보물섬' 만화를 볼 때였나 보다. 투박한 까까머리에 포동포동한 젖살이 남아 있는 아이가 주인공인 시리즈였다. 그때는 제제의 이야기가 너무 슬프고 충격적이어서 울거나 화가 나서 혼자 씩씩거리곤 했다. 바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이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유머와 따뜻한 감성이 묻어난 우정도 있었는데 어린 제제가 학대받은 장면만 뚜렷이 기억난다. 유명한 캐릭터 '짱구'와 비슷한 나이의 주인공인데 그저 해맑은 짱구와 달리 제제가 겪는 일상에 마음 아팠다.
가끔 책의 제목이나 제제라는 이름을 들으면 책으로 다시 읽고 싶었다. 번역서든 원서든 그 책을 읽으면 마음이 다시 아려올 거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작가의 필체로 작가의 생각을 읽고 싶었다.
<My Sweet Orange Tree>(1968년. Jose Mauro de Vasconcelos). 직역을 하면 나의 달콤한 오렌지 나무인데 한국어 제목에 왜 굳이 라임을 넣었을까 궁금했다. 이번에 원서를 읽으며 작가의 이름조차 몰랐는데 그에 대해, 이 작품의 배경 따위를 함께 알아보느라 계획한 독서 시간을 훌쩍 넘겨 버렸다. 30분을 넘기면 안 되었는데 이런저런 정보와 어휘를 찾으며 다시 깊은 독서, 정독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2시간을 쓴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브라질 사람이다. 조제 마우로 데 바스콘셀로스. 브라질의 언어는 포르투갈어일 테니 원서는 원래 포르투갈어로 쓰였을 것이다. 나는 포르투갈어를 전혀 모르므로 영어로 번역된 책을 읽고 있다. 한국어 번역 제목은 결국 원어에서 영어, 다시 한국어로 중역되었을 수도 있고 직접 누군가 포르투갈어에서 한국어로 바뀌면서 정해진 이름일 것이다. 알고 보니 소설에서 언급된 나무는 브라질에서 접목을 통해 라임 나무와 오렌지 나무가 섞인 것이라 한다. 저자 또한 원주민계 어머니와 포르투갈계 아버지의 자녀라 하니 더욱 사연 깊은 작품으로 다가온다.
아직 초반인데도 시선을 사로잡는 문구와 제제의 말이 나를 멈추게 한다. 웃기고 슬프고 놀라고 아프기도 하지만 그림 없는 책인데도 장면 하나하나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 생생하다. 어렴풋이 제제가 6살이나 7살은 되었을 것이라 추측했는데 자신은 5살이라고 밝히는 제제의 말에 놀랐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 나오는 옥희보다 훨씬 어린것 같다. 그런데도 제제(ZeZe)가 형에게 묻는 질문은 너무 성숙하다.
"Can you feel the age of reason?"(형은 철이 든 것 같아? p.6)
형, 토토카(Totoca)는 뭐라고 답했을까.
"What's this nonsense?(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냐?"p.6)
마음 읽어주기를 강조하는 요즘 같으면 속으로 놀라더라도 왜 그런 질문을 하냐고, 어디서 들었는지 혹은 보았는지 되묻기라도 할 것이다. 어른도 명확하게 대답하기 쉽지 않은 추상어이지 않은가. 게다가 상대는 겨우 5살짜리 아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배경은 1920년대 브라질이다. 우리나라처럼 격변의 시기, 아이들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던 시기였다.
제제의 애어른 같은 질문에 피식 웃음이 나오다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철이 들었는가. 다 들지는 않은 것 같다. 부모가 된 지 오래되었지만 부모님의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하는 딸이자 며느리이고 엄마이다.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게 많고 깨달았어도 실천하지 못하는 게 많다. 때로는 아프면서도 외면하고 싶고 행복하면서도 불안하다. 철이 든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나로 서 있을 수 있는 성숙함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버겁고 부담스러운 의무감으로 느껴지기도 하니까.
오늘부터라도 철이 드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으면 좋겠다. 철이 들지 못해도 너무 자책하지 않으면 좋겠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4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 저자 J. M. 바스콘셀로스출판동녘발매 2022.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