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인가, 천사인가

(My Sweet Orange Tree)

by 애니마리아


제제는 자신이 악마의 대자(代子)라는 말을 믿는다. 악마가 자신의 대부(代父)라니. 얼마나 끔찍한 말인가. 겨우 다섯 살인 아이에게 누가 악마 같다는 말을 한 건지 이 말이 나올 때마다 문학적 감성이지만 솔직히 화가 치밀었다. 장난 좀 친다고 그런 건가. 누가 먼저 이 말을 시작했을까. 평소 말이 거친 아버지인가, 말 많은 누나들인가, 형 토토카인가, 도대체 누가 우리 제제를 낙인찍은 거야!



오늘 『 My Sweet Orange Tree 』를 읽으며 제제에게 가해지는 악담의 연유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Having a poor father is awful!"(Zeze)

아빠가 가난해서 짜증 나!(제제)

(중략)

"You're mean, Zeze. Mean as a snake. That's why..."(Totoca)

너 정말 못됐다, 제제. 뱀처럼 못됐어. 그러니까 네가... (토토가 형)

p.41/ 『 My Sweet Orange Tree 』




이날은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다. 가톨릭 신자가 많은 브라질에서 종교는 중세 유럽 못지않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사실 전날 열 명 가까운 형제와 제제의 부모는 함께 저녁 만찬을 먹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다. 제제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실직 상태였고 대신 엄마가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겨우 이어가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토스트 조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장면을 읽고 있자니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감자 먹는 사람들(1885 The Potato Eaters)'을 보는 듯했다.



아, 가난. 가난은 이토록 천사를 악마로도 만드는가 보다. 그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난 어린아이에게 세상은 너무 가혹하다. 아빠에게 이런 말을 한 자체는 잔인하고 나쁜 말이긴 하다. 하지만 이 말을 하자마자 제제와 토토카 형은 눈앞에 서 있는 아빠를 발견한다. 이때 아빠가 제제를 또 때리지나 않을까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하지만 아빠는 복잡한 시선을 보낸 채 모자를 쓰고 말없이 집을 나간다. 아빠도, 그 말을 한 제제도, 옆에서 들은 형도 모두 상처를 받았다. 누구를 탓해야 할까. 철없는 제제인가, 무능한 아빠인가, 어쩔 수 없는 가난의 환경인가.



제제는 전날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라며 신발을 밖에 놓아두었다. 형은 소용없다며 말렸지만 제제는 듣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비어 있는 신발을 본 제제는 얼마나 실망스러웠겠는가. 이런 일이 있어서인지 제제는 자신이 악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정말 자신은 못된 아이라고. 정말 그럴까. 제제는 겨우 다섯 살이다.



다시 며칠 전. 무료 장난감을 나누어준다는 공장에 겨우 갔지만 늦어서 쓰레기만 남았다. 함께 간 어린 동생 루이는 지치고 힘들어 울먹인다. 동생을 천사로 여기며 끔찍이 사랑하는 제제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말 인형을 고쳐서 주겠다고 약속한다. 최악의 크리스마스이브 날 저녁 제제는 소중한 장난감을 동생에게 양보하며 그 말을 지켰다. 세상에 이런 악마가 있는가.



시간은 더 이전으로 돌아간다. 일을 마치고 온 엄마는 피곤하고 지쳐 보인다. 엄마 역시 가난해서 6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학교도 못 가고 일하다가 작업대에서 내려오지 못해 그대로 쉬를 한 경험은 평생 트라우마가 되었다. 엄마의 말을 들은 제제는 다짐한다.



'내가 지혜로운 시인이 되고 지혜로워지면 엄마에게 내 시를 꼭 읽어 줄 거야(p.22) I promised that when I was a poet and wise, I'd read her my poems.'라고.



세상에 이런 천사가 있는가. 하지만 크리스마스 아침에 선물은커녕 토스트 조각만 먹어야 했던 천사는 아빠에게 모진 말을 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겨우 다섯 살짜리 천사는 루시퍼(교만하여 하느님과 동등해지려 해서 지옥으로 추방된 타락 천사 이야기/라틴어 성)와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할까.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마태복음 5장 3절)'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의 가난은 물질적 가난을 지칭한다. 물질적 가난은 너무 끔찍하다. 제제의 말처럼 짜증 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음이 가난한 것은 괜찮을까. 성경을 읽어도 그 깊은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아마 겸손한 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자가 되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제제와 같은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개념이다.



오늘 제제의 이야기를 읽자니 물질적 가난과 정신적 가난의 간극이 유독 크게 느껴진다. 세상에는 어른인 나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비극이 있다. 소설이지만 제제가 마음까지 가난해지지 않으면 좋겠다. 어른이 될 때까지는 겸손보다는 사랑의 기억이 더 많은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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