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weet Orange Tree)
"아빠"
"그래, 아들? 온종일 어디 있었니?"
아빠의 목소리에는 화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아빠에게 구두 닦기 상자를 보여드렸다.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꾸러미를 꺼냈다.
"보세요, 아빠. 제가 좋은 선물을 사 왔어요."
아빠는 미소를 지었다. 물건값이 얼마나 들었는지 아시는 것 같았다.
"마음에 들어요? 가게에서 제일 좋은 거래요."
아빠는 꾸러미를 열어 담배 냄새를 맡았다. 웃고 있었지만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p.49/My Sweet Orange Tree
5살짜리 아이가 아빠에게 담배를 선물한다니. 어떤 독자는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이런 내용이 소설에 있나' 하고 눈살을 찌푸릴지 모르겠다. 우선 이 소설은 순수 아동서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순수하고 감동적인 내용도 있지만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반영되어 폭력, 우울, 자기 비하와 같은 내용이 부분적으로 들어가 있으며 철학과 깊은 사유가 녹아 있기도 하다.
또한 이 소설은 1960년대 브라질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독자는 이러한 시간적 차이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국가도 다르지만 사회, 문화적 배경과 정황이 지금 우리나라와 많이 달랐다. 우리나라도 80년대에서 90년대까지는 길거리 및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번 선물 하나 없는 끔찍한 크리스마스이브와 아침을 보낸 제제가 '가난한 아빠를 저주'하는 듯한 장면을 언급했다. 오늘 어린 제제는 이내 자신의 철없는 소리가 아빠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형의 구두 상자를 어깨에 메고 집을 나섰다. 아빠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에 일을 해서 선물을 사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은 성탄절이다. 일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뿐더러 있다 해도 5살 먹은 어수룩한 꼬마에게 구두를 닦을 손님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 와중에 자신은 전문가가 아니라며 많은 돈을 받을 수 없다는 말까지 한다. 오늘도 제제 덕분에 슬프다가 웃기기도 하다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제제는 종일 먹지도 못하고 무거운 상자를 들고 다녔지만 돈벌이는 시원치 않았다. 이 장면을 읽으며 놀라운 것은 제제가 공짜로 주려는 어른의 돈을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선물을 받은 친구의 초대에도 응하지 않았다. 길거리의 아이라는 인상을 주는 어른들에게 구걸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다행히 소수의 착한 어른의 품삯과 친구가 빌려준 돈으로 겨우 담배 한 꾸러미를 산 제제는 한밤중에 귀가할 수 있었다. 담배를 선물로 택한 제제의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기분이 상한 아빠를 위해 어린아이가 종일 굶으며 돈을 벌려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빠, 아까 한 말이요... 정말.... 그런 뜻으로 한 건... 아닌데..."(p.50)
'I didn't mean to, Father... I didn't mean to say... that.'
아빠는 제제를 안으며 울지 말라고 했다. 앞으로 살다 보면 울 일이 정말 많을 거라며. 제제는 흐느꼈고 나도 눈물이 났다. 아직 초반인데 벌써 몇 번이나 울먹였는지 모르겠다.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야기와 캐릭터에 이토록 감정이입하는 것은 소설의 진정성과 사실적 묘사에서 오는 힘일 것이다. 오늘 나는 제제와 아빠의 아픔과 화해를 보았지만 앞으로 더 많이 울 것만 같다.
오래전 읽었던 제제의 큰 상실 이야기는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큰일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얼마나 많이 눈물을 참아야 할까. 참을 수나 있을까. 그때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으며 큰 상실 이야기만 기억해서인지 제제의 작은 에피소드의 슬픔과 굴곡은 잊고 있었다. 맨날 아빠에게 맞으면서도 나쁜 말 한 번 했다는 이유로 자책하는 제제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김혜자 연기자 님의 말도 떠오른다.
신나는 판타지 소설은 설렘과 재미를 선사하지만 현실을 반영한 성장 소설의 비극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제제가 하루하루 넘어지고 일어나며 성장하듯 나 또한 그와 함께 웃고 웃으며 함께 성장하는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제제의 곁으로 가서 어깨를 포근히 안아주고 싶다.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그 어떤 비싼 담배보다 '아빠를 생각하는 너의 마음이 가장 귀한 선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