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면서도 몽환적인 신비감이 인상적인 단편, 『19호실의 손님』은 『위대한 개츠비 츠비』(1925)로 알려진 작가 프란시스 스콧 피츠 제럴드(F. Scott Fitzgerald, 1896년 ~ 1940년)의 작품이다. 소설 단행본으로 출간된 게 아니었기에 그동안 단독 제목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에스콰이어 ESQUIRE 》(1935)라는 잡지에 실렸던 소설로 올해 임리나 번역가님이 처음으로 번역하여 영어 원문과 함께 출간, 세상에 선보였다.
이야기는 캐스라는 남자가 머물고 있는 호텔 방에서 잠이 들지 못하고 방황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석연찮은 기운을 느끼고 있던 캐스는 마침 장작을 피우고 있는 경비원과 어떤 손님에 대해 대화한다. 19호실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가 언제, 어디서 왔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19호실 손님이 너무나 궁금한 캐스는 그가 도둑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지만 경비원은 그 말을 부인하며 손님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알고 보니 19호실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 방이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캐스는 더욱 손님의 정체를 알아내고자 하는 집착이 심해지는데‥‥과연 그 손님의 정체는 무엇인가. 19호실이 없다면 어찌 매일 새벽마다 호텔로 돌아오는 것일까.
어둡고 서늘한 미스터리의 스릴이 느껴지는 부분을 읽으면서 독자는 묘하게 이 이야기에 빠져든다. 존재하지 않는 방에 존재하는 19호실의 손님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흐름 속에서 무서움보다는 혼란스러움을 선사한다.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읽는 내내 주인공 캐스 못지않게 답답하고 궁금한 심정으로 괴로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읽고 나서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감정 때문에 부분적으로 다시 읽기도 하고 원문을 찾아 비교해 보며 분석해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유령의 분위기를 장착한 미스터리적 요소보다는 심리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요소와 상징이 탁월한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원제는 The Guest in Room Nineteen에서 드러나듯 '19'라는 숫자가 '손님' 못지않게 궁금증을 자아낸다. 19는 13처럼 서양에서 딱히 금기시되는 숫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저 문학과 예술, 심리 분야에서 상징적 요소로 사용되는 설이 있다. 또한 불완전한 경계를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다. 18은 청소년의 끝, 20은 성인의 시작을 의미하나 19는 청소년과 성인의 딱 중간으로 과도기적 상징이라는 것이다. 18이나 19 모두 청소년 아닌가 싶지만 한국에서도 19(전통적 한국 나이)는 고립과 가장 힘든 청소년기인 고3의 이미지가 있으니 그 나름 설득력이 있긴 하다.
다음으로 캐스라는 인물을 다뤄보자. 캐스는 노인이자 허약한 사람으로 종종 묘사된다. 가족이 아닌 호텔에서 오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왠지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알게 모르게 지친 말투 속에서 회한과 고집이 느껴지기도 한다. 장작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는 자신이기에 상대적으로 힘이 있는 경비원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직접 들어보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삶에 대한 애착과 자존심도 보인다.
19호실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호텔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손님은 누구인가. 분명 경비원은 그를 목격했고 대화도 종종 나누었으며 함께 장작을 나르기도 했다. 호텔의 다른 직원이나 의사 등 아무도 그 손님을 본 적이 없다. 경비원은 손님을 마주한 유일한 사람으로서 손님의 외모를 전하는 말에서 단서를 찾아보자.
"글쎄요, 그 사람은 늙은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젊은이도 아니었어요. 아픈 적이 있는 것 같았고, 얼굴에는 옅은 흉터가 있었어요.
20쪽/『19호실의 손님』 중에서
손님은 단지 한 사람의 인격체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수 있다. 늙지도 젊지도 않았다는 말에서 누구든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누구든 될 수 있다? 그런데 정체는 손님이다. 손님이 무엇인가. 집이든 호텔이든 내가 머무는 곳에 오는 외부인이다. 방문객이다. 누구든 해당하고 누구에게는 찾아올 수 있는 손님으로 누가 있을 수 있나.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처음과 끝이 없기에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하는 노화의 흔적이 없다. 그러면 옅은 흉터는 왜 있는가. 어느 한 시점을 지나가는 생명체, 그중에서도 인간은 시간이라는 기차의 한 칸을 잠시 차지했다 가면서 온갖 고난과 사건을 거쳐가는 존재다. 죽음 자체는 늙지 않았지만 그가 지나가는 곳에서, 스치는 인간 사이에서 상처와 힘겨움이 조각처럼 새겨져 있다.
한편으로 그 손님은 먼저 세상을 뜬 친구일 수도 있고 캐스 자신일 수도 있다. 흉터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이전 동료의 얼굴을 떠올리는 캐스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또한 호텔 직원과 카드놀이를 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든지 가끔 그의 영혼이 찬 공기와 함께 방안을 떠도는 느낌을 경험하는 것에서 죽음이 그에게 신호를 보이고 있는 듯한 암시가 될 수 있다. 점점 그 횟수가 늘어나는 것은 죽음이 그에게 가까이 왔음을 말하는 건 아닌지.
마지막으로' 장작'을 주목하고 싶다. 처음에 장작은 그저 평범한 도구라고 생각하고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복해 읽을수록 장작은 중요한 매개체이자 또 다른 상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작은 생명을 유지하는 따뜻한 연료이자 그 쓰임이 다 하고 나면 결국 재로 남는 소모품이기도 하다. 캐스가 마침내 손님과 만나서 제안한 것은 바로 창고에서 장작을 찾아 함께 나르는 일이었다. 장작을 피우면 따뜻해지고 몸에 온기가 남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기력이 다한 캐스는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나를 수 없기에 손님의 도움을 청하나 무례할 정도로 손님에게 차갑게 대한다. 혼자 들 수 있다고 되받아치다가 도와달라고 했다가를 반복하며.
'장작은 하나뿐이었다.'(29쪽)
하나뿐인 장작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 연료이지 않았나 싶다. 끝까지 차분하고 친절한 태도를 잃지 않은 손님, 그 손님에게 끝까지 호통치는 캐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죽음과도 같은 손님, 손님 같은 죽음을 대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 이제 곧 꺼질 잉걸불처럼 독자의 마음에 남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