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구직할 도리는 없었다. 하는 수없이 하던 살림을 파하고 아내란 사람과 어린아이 하나 있던 것을 시골 일갓집으로 내려보내고 나 혼자 빙빙 떠돌아다니며 지내는 것이 벌써 달장간이나 되었다.
14쪽/『한여름밤/저기압』의 <한여름밤> 중에서
이 책을 편 날은 정말 후텁지근한 날이었다. 40도를 오르내리던 날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30도 이상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습도는 더 심해진 듯 숨이 막혔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번갈아 틀었던 날. 마침 책의 재사(才思) 부분에 '후텁지근하다'는 단어가 나온 것을 보고 '아니, 어떻게 알았지?'라는 말을 속으로 내뱉기도 했다. 마치 내 마음을 들켰다는 듯이 뜨끔거린다는 생각과 함께.
본 작품집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작가, 포석 조명희의 단편으로 <한여름밤>, <저기압>이라는 두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1894년 충청북도 진천 출생으로 가난으로 서울 중앙고 보통학교를 중퇴했으며 3.1 운동 때 투옥되기도 하였다. 1919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단편소설과 평론을 발표하며 지냈다. <한여름밤>은 1927년 <조선지광>이라는 문예, 사상지에 실은 소설이다. 두 번째 이야기, <저기압>은 한 해 전, 1926년 작품이다.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당시 소련으로 망명했으나 1938년 간첩 혐의로 체포되었다. 향년 44세의 젊은 나이에 총살당한 후 1956년이 되어서 무혐의로 복권되었으나 1987년 해금(책, 영화, 정치 활동 금지 해제) 조치 이후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을 읽으며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이 으레 그랬듯 조명희의 삶도 순탄치 않았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한여름밤>은 한 가난한 청년이 실업자가 되어 처자식마저 멀리 보내고 잘 곳이 없어 노숙자처럼 하룻밤을 보내며 겪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반면 <저기압>에서는 일제강점기 열악한 환경의 신문사에서 일하는 한 기자가 밀린 월급, 밀린 월세 문제로 쫓겨 나가는 등 난리를 겪는 이야기이다. 비슷한 듯 다른 이 두 이야기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간 우리 아버지들의 애환과 울분, 시대적 비극을 담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떠오르는 두 가지 유명한 그림이 있었다.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과 이중섭의 <소>. 두 주인공의 삶은 마치 빛이 없는 어두운 오두막 안에서 대가족이 대화 한 마디, 미소도 없이 그저 꾸역꾸역 감자를 먹는 모습, 또한 우리 농민의 강인한 모습을 대변하는 듯한 우직한 소의 모습과 같았다.
독자 가운데 일부는 인물들의 거친 말투와 어두운 현실 묘사가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이 작품들이 역사적 과도기와 근대를 살아갔던 선조들의 아픔을 사질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주권이 없던 시기에 한국인이 겪어야 했던 억울함, 가난, 무엇보다도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리라.
소설에서 잘 곳이 없어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근처)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은 더럽고 아프고 가까이하기 망설여지는 모습을 하고 있다. 도회미를 망친다는 이유로 일제는 소위 '수직꾼'을 내세워 부랑자들을 내쫓게 한다. 비극은 부랑아들도, 수직꾼도 모두 벼랑 끝에 내몰린 한국의 서민들이라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가난한 노숙자를 내쫓기 위해 같은 한국인을 고용했기에 서로 반복하고 싸우면서 그들의 인간성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첫 인용에서 실직한 청년이 가장 가까운 가족, 아내와 아이를 남 대하듯 '아내라는 사람, 어린아이 하나'라고 묘사한 부분은 이런 비극의 역사를 거쳐야 했던 시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 슬프면서도 인상적이었던 문구가 있다.
"아하 그것들도 까딱하면 저 모자 거지같이 될 것이 아니야? 나는 이 팔다리 병신 거지같이...."
아니다. 이 팔다리 병신 거지가 곧 나요. 나의 처자가 곧 저 모자 거지인 듯싶다. 나는 다시 한번 부르르 떨었다.
29쪽/<한여름밤>
이는 우리에게 뿌리 박힌 '정'으로 서로에 대한 극복하며 타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가족을 생각하며 살아갈 결심을 하는 주인공의 독백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 <저기압>에는 '권태'라는 말이 여섯 번이나 나온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약자들의 그림자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러한 권태와 고통을 삼키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때로는 어깨에 짓눌린 가장의 무게에 도망가고 싶고, 자기를 위해 돈을 써버리고 싶으면서도 다시 돌아서 집으로 향한 가장, 기자의 모습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성실한 부모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 작품은 다소 거칠지만 독자에게 다양한 우리말을 만나 볼 기회를 주기도 한다. 사투리, 비어도 있지만 이제는 낯선 언어가 된 어휘들(경무대, 달장간, 솔곳이, 등물)을 접하며 시대를 읽고 역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가끔 대한민국의 힘겨운 상황과 경쟁 사회를 빗대어 '헬 조선'이라는 말이 언급되기도 한다. 물론 시대마다 감내해야 할 역경과 사정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조상들의 역사와 삶을 알고도 그때가 지금보다 더 천국이라는 말을 감히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분들은 아예 주권이 없고, 더 나은 삶을 위해 고를 선택지가 없었다. 몇몇 의인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고통을 알리거나 의지할 곳도 거의 없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고통과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과거에 비해 누리는 것이 많고 작은 희망이라도 있어 감사하다. 적어도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 어떤 삶을 살지 정하는 선택지가 더 많다.
아직 대한민국은 덥고 근로자들은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고 소식도 종종 들려 안타깝다. 살다 보면 답답한 날이 행복하고 즐거운 날보다 더 많지만 그래도 비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힘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건 각자 다를 것이다. 가족일 수도,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내 삶에 대한 의리일 수도 있다. 역사와 문학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고 삶의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조명희의 작품 <한여름밤>과 <저기압>을 읽으며 대한민국의 발자취를 걸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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