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무엇이 있을까

내 소유물이 나를 말해주는가

by 애니마리아


우리 신부님은 귀여우시다. 같은 말을 해도 거부감 없게, 재미있게, 다정하게 하시는 재주가 있다. 강론하실 때도 유머를 놓지 않고 가볍게 말씀하시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아 늘 묵상할 거리를 남기시는 분. 외모는 MZ의 발랄한 교생 선생님 같으신데 간결한 말씀 속에 진지한 성찰이 있다. 신앙 너머 철학이 있다.



그날은 왠지 모르게 평소와 분위기가 좀 달랐다. 살인적 더위에도 교회법에 따라 긴 사제복을 여러 겹 입고 계신 신부님의 목소리에서 삶의 피곤과 고난, 막연히 느껴지는 상처가 있었다. 내면적 갈등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미사 중에 '참다운 나'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이 오랫동안 마음의 잔상으로 남아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비유를 즐기신 예수님처럼 신부님도 당신의 경험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셨다. 어린 시절 어렵게 '아이패드 1'을 받게 되어 기뻤던 순간이 있었지만 일주일도 되지 않아 그 설렘은 사그라들었다. 일 년쯤 지나자 덤덤함은 시나브로 불쾌한 감정으로 변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저는 그때 왜 기분이 안 좋았을까요? 맞아요. 신제품이 나왔기 때문이지요. 제 것은 이미 고물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신제품을 갖게 된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일까요? 아마도 소유한 물건이 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미 한물간, 필요 없는, 혹은 가치가 떨어진 기계라고요. 비단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신부님은 이게 왜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하셨을까. 뒤이어 덧붙인 예시로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자동차, 핸드폰 출시와 소비자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몇 년 전 모 브랜드의 G 자동차 광고가 떠올랐다. 소비자에게 어필한 광고 카피,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G를 보여주었습니다'. 성공=G 자동차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킨 이 문구는 언뜻 멋있어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자동차조차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과 절망을 느낄 수도 있다. 광고 문구 하나가 누구에게는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칼이 되기도 한다. 생각 없이 그냥 받아들이기에는 대중매체의 가스라이팅의 힘이 너무 크다. 그러고 보면 자본주의나 능력주의가 너무 성과만을 추구할 때 파생되는 문제가 결코 가볍지 않은 것 같다.



체제의 장단점을 논하고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과연 우리가 소유한 것, 집, 차, 물건, 직업, 명성과 같은 것들이 나를 온전히 말해주는 기준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런 것들이 나의 가치를 모두 결정하고 판단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신부님은 바로 이런 속성에 대해 우리가 인간으로서 한 번 더 생각하길 바라셨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가치는 많은 것이 우리를 말해줄 수 있지만 물질적인 것 외에 분명히 나를 고유한 생명체로 존재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바로 그 가치를 찾는 일을 물질에서만 찾지 않을 때,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을 것이다.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신제품은 아무리 소위 '힙'하더라도 언젠가는 구형이 된다. 오늘부터라도 나의 구형 모델을 애정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건 어떨까. 어디 보자, 무엇이 있을까.


-알뜰폰 요금제를 쓰지만 괜찮다. 게임을 즐기지 않고 동영상만 가끔 본다. 통화도 잘 되고 인터넷도 잘 된다. 데이터가 한계가 있느니 2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요금이라 불필요한 지출을 할 필요도 없다. 조금 불편할 뿐.


-안드레아가 쓰던 핸드폰을 물려받아 쓰고 있지만 괜찮다. 통화도 잘 되고 SNS도 잘 된다. 조심조심 사용해서 액정도 깨지지 않고 잘 사용한다. 신제품?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내 가치는 아니니까.


-서재? 있으면 좋겠지만 괜찮다. 안드레아가 침대 옆에 구석에 책상과 컴퓨터를 놓아주었다. 미니 도서관이라 생각하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면 내가 누리는 것이 정말 많다. 그것들 중 대부분은 감사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물질에 관한 한 위만 보면 늘 허기질 수밖에 없다. 아래를 보면 오히려 과분하게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물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 타인에 시선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으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먼저 나 자신에게 물어보자.


'내가 가진 것이 나를 말해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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