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 양처럼, 개는 개처럼

by 애니마리아


첫째는 먼저 사달라는 소리를 잘 하지 않는다. 말투와 눈빛으로 나는 아이의 욕구를 알아채는 편이다. 눈치 게임이다. 간혹 "ㅇㅇ 해줄까? ㅇㅇ사줄까? 엄마가 해줄게'라고 말하면 고마워하며 좋아한다. "그럼 좋죠, 잘 먹었어요. 좋네!"이러면서.



둘째는 좀 더 솔직하다. 좋게 말하면 당당하게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고 아쉬운 시선에서 말하면 말투가 좀 강하다. 나는 어른인데도 여전히 강한 억양, 센 말투의 사람과 대화가 어렵다. 그 사람의 타고난 성격일 수 있는데 지레 겁을 먹거나 혼자 상처받을 때가 있다. 상대는 무슨 의도에서 저렇게 말할까, 저런 표정은 내게 불만이 있다는 뜻인가.



"엄마! 마라탕 먹을래. 시켜줘. 마라탕!"



이제는 집밥 안 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솔직히 아이와 함께 밥 먹기도 쉽지 않다. 나는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으려 하지만 가끔 아이가 너무하다 싶을 때면 농담으로 소심하게 거부 의사표시를 할 때도 있다.



"안 돼.!"

"왜 안 되는데! 사줘. 지난주 안 시켰단 말이야. 어제 술 마셔서 해장해야 해."



요새 MZ라서 그런가.' 나는 안 그랬는데'라고 하면 정말 꼰대 같은 발언인가. 워낙 엄격하고 근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나는 이런 말은 엄두도 못 냈다. 순간 기가 막혔지만 주눅 들어 대화가 없었던 아버지와의 과거가 떠올라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허락해 준다.



사실 내가 듣고 싶은 말투는 이런 것이었다.

"엄마, 또 마라탕이 먹고 싶어. 좀 시켜주면 안 될까요?"



내 속으로 낳았지만 아이는 나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안다. 아이가 밝고 명랑한 성격이라고 애써 생각하려고 노력하긴 하지만 쉽지 않다. 나이상으로 사춘기는 지난 것 같은데, 나는 나 나름대로 아이를 편하게 해주려고 하는데 우리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나는 가톨릭 신자지만 가끔 법륜 스님의 영상에서 조언을 듣곤 한다. 문득 <유 키즈 온 더 블록>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하신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인생이 안 풀린다고 나한테 와서 해결해 달라고 합니다. 나는 결혼도 안 했고 애도 없는데요. 하하."



그때 지었던 미소를 다시 한번 지어본다. 그래, 성격이 다를 뿐이야. 아이가 내게 맞춰줄 수는 없지. 하지만 조금만 더 예의를 갖추어 말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남아있다. 그래도 나는 아이의 엄마니까, 조금이라도 더 살았으니까 마음을 다스려본다.



개는 멍멍

고양이는 야옹야옹

양은 매애, 매애

개는 멍멍, 왈왈



양은 초식 동물이고

개는 잡식 동물이다.



양이 '멍멍'하고 울지 않는다. 양은 개가 아니니까.

개가 '매애' 하고 짖을 리도 없다. 개는 양이 아니니까.



결국 나는 양 앞에서 양치기 엄마가 되고

강아지 앞에서 강아지 집사가 될 수밖에.

그게 나의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아이와 잘 지낼 수 있는 길이겠지.



완전히 해소가 되지 않고 안 맞는 옷을 입는 것처럼 불편할 때도 있지만

언젠가 그 옷에 길이 들기 바라며

따뜻한 시선을, 빛을 잃지 않고 보내고 싶다. 그들의 그늘이 되고 싶다.

그렇게 나도 아이들의 나무가 될 수 있겠지? 내게 와서 기대고 풀을 뜯고 가지를 꺾기도 하고 과일도 따 가기도 하면서.



제제에게 포르투갈 아저씨가 가장 따뜻하고 이해심 있는 어른이 되어 준 것처럼 행복을 주는 엄마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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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Leonardo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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