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ilette.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나를 깨운 첫 단어다. 시작은 늘 그렇듯 기도와 독서다. 웬만하면 원서와 국내서를 함께 읽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 이제는 버릇이 된 것 같다. 30분 이하로 읽어야지 마음먹지만 그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몰랐던 어휘, 애매한 어휘, 알지만 좀 더 깊이 알고 습득하고픈 어휘나 문장에 멈추곤 한다. 사전을 찾고, CHAT-GPT를 열고 메모하고 정리한다. 정신없이 읽고 찾고 정리하고 이해하고 다시 읽다 보니 30분이 아니라 2시간 30분이 지났다. 오늘 아침 루틴은 일부 포기하거나 수정해야 했다. 그나마 휴일이었기에 다행이다.
다시 Toilette로 돌아가 보자. 언뜻 보아도 변기, 화장실을 뜻하는 단어다. 실제로 toilet이라는 단어와 같다고 나와 있고 맨 앞에 나오는 뜻은 변기 아니면 화장실(주로 영국)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되었다. 이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뜻이 있어야 될 것 같았다. 글, 특히 소설을 읽을 때는 맥락과 문화를 이해해야 하고 숨은 뜻을 찾아내는 고된 작업이기도 하니까.
『MARJORIE'S THREE GIFTS 』(가제:마조리의 세 가지 선물)를 읽고 있었다. 『작은 아씨들』(Little Women)의 작가 루이자 메이 앨콧(Louisa May Alcott)의 단편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는 두 편의 이야기가 있는데, 두 번째 이야기 <Roses and Forget-Me-Nots>에 나오는 단어였다.
상황은 이렇다. 무도회를 앞둔 소녀, 벨(Belle)은 어머니에게 옷을 선물 받았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본 순간 잠시 행복을 느꼈지만 이내 얼굴은 사색이 된다. 함께 몸에 달아야 할 화환이 빠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 꽃 장식에 하녀는 당황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이런, 마님! 그들이 화관을 잊었나 보네요.! 어쩌면 좋아! 화관이 없으면 벨 아가씨의 매혹적인_____은 망한 거나 다름없는데. 아무리 찾아도 화관이 없네요."
"Great Heavens, madame! the wreath has been forgotten! What an affliction! Mademoiselle's enchanting toilette is destroyed without the wreath, and nowhere do I find it."
P.24/ <Roses and Forget-Me-Nots>
원서를 읽으며 즐기려는 데에 만족한다면 이야기의 흐름을 깨지는 않으니 그냥 넘어가도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번역을 하려면 상식으로 아는 뜻에서 넘어가서는 안 된다. 밑줄 친 부분을 toilette의 외형만 보고 '화장실'이라고 번역했다가는 그야말로 대참사가 일어날 테니. 문맥도 안 맞을뿐더러 시가 아니니 뜬금없이 비유로 해석하기도 이상하다. 바로 이때 사전을 보고 또 봐야 한다.
다양한 의미를 찾아 아래로, 아래로 시선을 내리다 보면 저 끝에 '몸 단장'이라는 뜻이 나온다. 변기나 화장실과 몸단장, 몸치장과 전혀 다른 말 같지만 아예 연관이 없는 건 아니다. 지금도 우리는 화장실에서 볼일만 보는 건 아니지 않은가. 특히 여성의 경우 몸단장만을 위해서 화장실을 들르기도 하니까. 뜻을 보고 나면 결국 본 뜻에서 파생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물론 추측이 미리 가능한 사람도 있겠지만 결코 쉽지 않다. 어쨌든 새로 발견한 뜻으로 퍼즐을 맞추어 보면 이렇다.
"화관이 없으면 벨 아가씨의 매혹적인 몸치장은 망한 거나 다름없는데"(본문 중에서)
결국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라는 속담은 번역하는 사람에게 숙명 같은 원칙으로 작용한다. 아는 단어도 찾고 또 찾아야 하는 운명. 그래서 외국어로 된 책의 최초의 독자이자 가장 충실한 독자는 그 책의 번역가라는 말이 나오나 보다. 씹고 또 씹고 깊게 읽으며 문자 너머의 문화, 역사, 맥락 등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니 말이다.
슬프게도 인간이 활자로 된 번역을 할 때 AI처럼 빨리할 수는 없다. 아무리 응용력이 뛰어나도 소위 '생각'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문학 번역의 경우 AI는 아직 어색하게 출력물을 내놓는다고 하지만 그 간격이 점점 좁아지고 있긴 하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AI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로 참고할 결과물을 내놓는다.
역으로 생각하면 생각을 하기에 인간은 AI와 다를 수 있다. 인간만의 고유함을 유지할 수 있다. 생각마저 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AI보다 못한 존재가 될 것 같다. 속도나 효율이라는 잣대만으로는 도저히 AI를 이길 수 없다. 통제할 수도 없다. 생각을 해야 그들을 감독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검증을 통해 다시 AI와 협업하고 이용할 수 있다.
오늘도 나를 막아서는 한 단어로 시작해 AI라는 거창한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요즘 매스컴과 강연에서 이호선 교수님이 자주 언급하시는 말씀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책을 펴고 10쪽만 읽으세요. 그곳에서 단어 하나, 문장 하나만이라도 꺼내어 새로 공부하고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 보세요. 꾸준히. 자존감이 올라가고 공허함이 줄어들며 삶이 달라질 겁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우리의 어휘와 사고를 늘리며 우리 안에 르네상스를 일으킬 수 있어요."
이호선 교수님의 강연 중에서
어휘든, 문장이든, 길에서 만난 아이의 순수함이든 배울 것이 넘쳐난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멈추어 생각해 보면 명상할 거리, 글을 쓸 소재가 반짝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려면 아주 잠깐이라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할 듯하다. 어차피 속도로는 AI를 이길 수 없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 불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지금은 어찌어찌 겨우 따라가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도 있다. 그럴수록 욕심을 내려놓고 내 안의 불안을 진정시키고 싶다. 하루 한 단어라도, 아니 일주일에 한 단어라도, 두 개 이상이면 더 좋고. 감사할 일이고. 생각할 수 있게 하니까.
나만의 르네상스를 내면에 지을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