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욕망이 충족될수록 더 큰 욕망을 갖는 유일한 동물이며,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유일한 동물이다."
- 헨리 조지-
p.7/『다이아몬드 목걸이/진주 목걸이』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서문에 인용된 헨리 조지(Henry George)가 누군지 몰랐다. 하지만 그의 말은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인 욕망과 행태를 참 날카롭게 지적했다고 생각했다. 그의 깊은 통찰과 고백에 당연히 인문학자나 작가라고 짐작했으나 실제로 그는 미국의 토지개혁가이자 경제학자 출신이었다. 특히 경제의 관점에서 인간은 이익을 좇는 존재이고 어느 순간부터 필요가 아니라 욕망을 욕망하는 잉여인간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 듯하다.
문득 원문을 찾고 싶어졌다. 이 문구는 그의 저서 『빈곤과 진보 Progress and Poverty 』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원문을 보니 충분히 충족이 되는데도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이 더욱 냉정하고 끔찍하게 느껴졌다.(물론 오류의 일반화를 말하는 건 아니다) the only animal(유일한 동물)이라는 부분에서 소위 '뼈 때리는' 아픔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Man is the only animal whose desires increase as they are fed; the only animal that is never satisfied.”
― Henry George
이어서 펼쳐지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진주 목걸이>. 표면적으로는 '목걸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고 각각 서두의 인용구대로 인간의 욕망을 다룬 사회 풍자 소설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단지 전자는 주인공 마틸드의 허영과 가식에 초점을 두었다면, 후자는 주인공이 아닌 그 주변 인물의 편견과 욕망이 오히려 문제가 되는 양상을 띤다.
이 두 작품의 차이는 그뿐만 아니다. 우선 작가도 다르다. 본래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국내에 <목걸이>(The Necklace, 일부 영어 번역본 The Diamond Necklace)라는 작품으로 주로 알려져 있고 작가는 기 드 모파상이다. 1850년 생으로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출생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으나 청년 시절 플로베르(프랑스 사실주의 소설가 1821~1880)의 사사( 師事) 했으며 졸라, 도태와 같은 문인들과 교류했다. 단편집 <비곗덩어리>(1880) 및 <여자의 일생>(1883)을 발표했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1884년 발표한 작품이다. 신경 질환으로 고생하다가 1893년 42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두 번째 작품 <진주 목걸이>는 역시 프랑스 문인인 윌리엄 서머싯 몸(1874~1965)의 단편이다. 그 역시 어린 시절 부모를 잃는 아픔을 겪었으나 학업에 몰두해 처음에 의사가 되었다. 단지 문학에 더 관심이 갔기에 결국 작가의 길을 걸었다. <잭 스트로>(1908)라는 극 외에 소설 <인간의 굴레>(1915)가 있으며 장편소설 <달과 6펜스>(1919)도 잘 알려져 있다. <진주 목걸이>는 그가 69세 때인 1943년 작품이며 1954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명예 훈위 칭호를 받기도 했다.
어릴 적 읽었던 <다이아몬드 목걸이>의 허망한 결말을 잊을 수가 없다. 한 여인의 10년이라는 세월을 앗아가게 만든 진정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순간의 착각, 지나친 욕심, 멍청한 실수, 허영, 아니면 그토록 정복하길 원했지만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는 덫이 된 목걸이에 대한 집착이었을까. 어쩌면 마틸드가 진정 원한 것은 목걸이 자체가 아니라 목걸이를 통해 꽃을 피우며 빛나고 싶은 욕망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너무 지나쳤다는 것이다. 인생의 가치를 외모나 타인의 평판 같은 외부에서만 찾고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몰랐다. 만족하지 못하니 사랑하는 남편마저 무시했고 거짓 환상에 매몰되어 결국 저절로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아프게 했다.
마틸드에겐 파티용 옷도, 보석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만을 사랑했다. 그녀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느꼈다. 아주 기쁘고 싶었고, 부러움을 사고 싶었으며, 매력적인 존재가 되고 싶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찾고 원하게 만들고 싶었다.
18쪽/다이아몬드 목걸이
그에 비해 <진주 목걸이>의 주인공 로빈슨은 다소 내성적이고 신비에 싸인 여인으로 비친다. 프랑스의 지식인이지만 가난한 탓에 영국의 한 가정에 들어가 교사로 일한다. 하지만 하인이나 다름없이 일해야 했고 무엇보다 안주인의 무시를 당해야 했다. 로빈슨은 오히려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며 있는 그대로 자신을 내보이고 가짜 목걸이라고 여기는 장신구도 당당히 걸고 나오는 대범함도 보인다. 로빈슨을 무시하는 사람은 식사에 초대된 다른 여성 링게이트가 오히려 허영과 편견에 사로잡힌 악역이 되어 대척점을 이룬다. 닮은 듯 다른 설정과 주제가 있어 이 두 작품을 비교하며 차이를 느껴보는 것도 하나의 흥미로운 요소가 된다.
서머싯 몸은 모파상의 작품을 흠모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목걸이에 대한 플롯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한다. 허영과 욕망을 비꼬는 풍자가 아닌, 편견과 무시에 대한 저항이 느껴질 정도로 이야기의 반전이 기분 좋게 느껴지는 기승전결을 펼쳐놓기 때문이다.
<진주 목걸이>에서 주목할 것은 우리가 암암리에 정해 놓은 사회적 계층과 그에 대한 편견이다. 이 사람은 열등한 직업, 위치에 있으니 그에 맞는 수준에서 놀아야 한다는 인간의 오만을 꼬집는다. 정작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 자체를 다뤄야 함을 호소하는 듯한 대사가 이를 대변한다.
"우리는 가정교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백작이 대답했다.
"우리는 진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진주 목걸이는 5만 파운드 이상의 가치가 있고요."
48~49쪽/진주 목걸이
개인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불안하고 힘들었던 이 시기 서양의 배경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안타깝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는 생각도 하였다. 조선 중, 후기에 살았던 허난설헌(허준의 누이이자 여류 시인)은 양반임에도 자신의 재능을 자유로이 펼치지 못하고 불행한 운명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실수의 아이러니는 이 두 작품의 또 다른 기둥이다. 한 사람은 자신의 실수로 10년을 낭비하고 다른 한 사람은 타인의 실수로 엄청난 행운과 행복을 맞이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차 한 잔의 여유와 시간으로 깊은 문학의 맛을 보고 잠깐이나마 여운 있는 독서를 좋아한다면 한 책으로 묶인 두 단편, 『다이아몬드 목걸이/진주 목걸이』를 추천한다. 목걸이에 대한 욕망보다 독서에 대한 욕구만큼은 백해무익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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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목걸이 / 진주 목걸이저자서머싯 몸출판북도슨트발매 2025.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