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소설의 시작

(City of Night Birds 읽다가)

by 애니마리아


2024년 10월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때 즈음 또 다른 한국계 김주혜 작가는 러시아에서 '야스나야 폴랴나 문학상(톨스토이 문학상)'울 수상했다. 2022년에 발표한 『 Beasts of a Little Land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는 작품이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잇는 장편소설이자 역사, 로맨스로 화제가 되었던 책이었다. 한국 근대의 격동기를 거쳐온 한 여인의 이야기 속에 담긴 사랑, 배신, 갈등이 섬세하게 그려지며 깊은 인상을 받았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약 3년이 지나고 낸 또 다른 장편 『밤새들의 도시 City of Night Birds 』가 올해 초에 나왔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우선 배경이 낯설었다. 한국이 아닌 러시아였고. 캐릭터 또한 러시아 발레단을 그린 외국 소설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러시아도, 발레도 잘 알지 못하기에 소설이지만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지 망설여졌다.



단 이 책이 출간되자 <보그>와 같은 잡지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고, 아마존 에이터의 추천이 이어졌으며 할리우드 배우 리즈 위더스푼 북클럽에도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작품의 내용이 더 궁금해졌다. 독서에 일가견이 있는 누군가의 선정이나 상을 주었다는 것 필수 자격이거나 내게 늘 좋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만큼 논란이 되었으니 토론할 거리, 생각할 거리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직 초반을 읽는 중이나, '케데헌'처럼 강력한 인트로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내 공상도 멈춘다. 이제는 내가 끔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 말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 들어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When the plane lands, my reveries cease. All I can think of is hiding where no one - other than myself-thinks I'm a horrible person. /p.2 『 City of Night Birds 』"



주인공 나탈리아 레오노바 Natalia Leonova의 독백이다. 비행기 안에서 최고급 대우를 받으며 보드카를 마시는 걸로 봐서 나탈리아는 매우 성공한 발레 댄서임에 분명하다. 유명한 사람이 흔히 겪는 일이긴 하나 그녀는 좀 전에 매우 불친절한 태도를 보였다. 한 승무원의 사인 요청을 냉담하게 거절한 것이다. 이 독백은 그녀의 차가운 거절 후 묘한 분위기에서 나온 자기 고백이자 주인공의 복잡한 사연을 암시하는 구절 같기도 하다.



소위 자기 디스를 하는 독백이 오히려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궁금증은 더해지고 장면은 갑자기 이륙하는 비행기에서 순식간에 솟구치는 로켓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안나 카레니나의 '고통'과, 영화 <물랭루주>의 화려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소설의 어긋난 운명, <어톤먼트 Atonement>의 회환, 그리고 <미션 임파서블>의 강력한 등장이 섞여 있다.



오디오북으로 흘려들었던 내용이지만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가 여운에 남아 다시 종이책으로 읽어보려 한다. 아주 조금씩 오랫동안. 나와 상관없던, 관심조차 없었던 발레와 같은 예술 세계를 탐험할 기회이지 않은가. 이 책이 조금이나마 나를 미지의 세계로 여행하게 해 주는 양탄자 역할을 하길 바란다. 용기를 냈으니 조금씩 읽다 보면 낙타에서 사자 단계를 향해 좀 더 갈 수 있지 않을까.





KakaoTalk_20250903_161325872.jpg?type=w1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통을 즐길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