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빛, 거절의 예술('너를 아끼며 살아라')

by 애니마리아


『너를 아끼며 살아라』 속 소제목 '거절해 줘서 고마워요'를 따라가면 나태주가 시인이 된 사연이 나온다. 결혼하기 전에 있었던 두 번의 첫사랑(실제로는 짝사랑으로 보인다)에 대한 이야기이다.



첫 번째는 15살 즈음에 한 여학생에게 보낸 연모 시 겸 편지였다. 하필 그 편지가 여학생의 아버지 손에 들어갔고 아직 학생이 그런 편지를 써서 되겠냐는 답장을 받은 후 그 일은 당시 학생이던 나태주 님이 기겁하며 끝났다. 두 번째는 초등학교 교사가 된 후 26살이 되던 해에 동료 여교사에게 반했지만 냉정한 거절을 받고 말았다. 바로 그때 겪은 시련 때문에 시 공모전에 도전하였고 1971년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정식 시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 시의 일부를 읽어본다.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
해 지는 서녘 구름만이 내 차지다

<대숲 아래서> 중에서/나태주

*자죽:자국의 사투리







그의 사연을 듣고 이 시의 일부를 들으니 가슴 먹먹한 시인의 심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랑 때문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했던 순간 썼던 시로 그가 그토록 원하던 시인이 되었다. 지나고 나면 웃픈 추억이 되었지만 아이러니 같은 상황이지 않을 수 없다. 한 독자로서 이를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불행 끝 행복이라고 해야 하나 망설여진다. 끝에 시인 확신에 차서 말한 맺음말이 현명하게 느껴진다. 거절당한 것이 때로는 인생의 축복이 되기도 하다는 말.



나태주 시인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 전 읽은 피츠제럴드의 단편, 『비행기 환승 세 시간 사이 』를 떠올렸다. 같은 소재가 각각 시와 소설로 승화되었지만 내용에서나 작가의 반응에서나 여러모로 전혀 다른 분위기로 표출된 것도 흥미로웠다. 한 사람은 첫사랑의 실패를 시로 표현하고 오랜 꿈을 이루었다. 또 다른 작가는 시대를 작품에 투영하여 화려한 데뷔에 성공했으나, 현실에서는 불행한 사랑과 갈등을 내내 겪어야 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었을까 잠시 고민해 보았지만 답이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



단, 나태주 시인은 피츠제럴드보다 좀 더 외관보다는 내면에 집중하고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긍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데에 집중하지 않았을까 싶다. 예술을 통한 부의 축적이나 화려한 데뷔가 아닌 그 자체에 대한 열정을 창조자의 마음으로 돌보고 가꾸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 본다. 고인이 된 피츠제럴드의 사연을 한낱 어리석은 독자인 내가 어찌 알겠는가. 예술은 때때로 알 듯하면서도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추상화 같다. 그저 명상하듯 거절과 꿈의 실현, 실패와 성공을 대입하며 생각해 본다. 질문과 함께.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있듯 예술이 태어난 곳에 실패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환한 빛이 생명을 발하듯, 거절을 통해 시가 탄생했다

결핍이 있어 충족에 가까워질 수 있는가

실패가 있어 성공을 부를 수 있는가

거절이 있기에 위대한 예술을 탄생시킬 수 있는가.

거절이 있기에 진정한 사랑을 만날 수 있는가

거절이 있기에 꿈을 이룰 수 있는가



나태주 시인의 고백은 개인적이면서도 삶에 적용해 볼 만한 가치를 주었다. 그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상투적인 말을 하지 않고도 세상의 이치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과감하고도 솔직한 그의 경험은 읽는 이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하는 동시에 놀라게도 한다. 그의 첫사랑에 대한 에피소드를 처음 듣는 게 아닌데도 글자로 된 이야기로 다시 접하니 느낌이 새롭다. 이 책 자체가 그의 어록을 한 편집자가 허락을 받아 구성한 에세이집인 것도 이렇나 특성에 기여한다. 시가 있고, 인터뷰 내용도 있고, 한 인간 선배의 따뜻한 충고도 있으며, 옆집 할아버지의 인자하고 웃긴 에피소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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