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나를 성장시키고

by 애니마리아


나태주 시인의 시나 산문, 어록 등을 읽어가다 보니 시가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는 착각이 든다. 시가 즐겁고 따뜻하다. 때로는 마음이 스산하고 아프다. 그분이 소개하는 시가 쉬워서 그럴까. 아무리 쉬운 시라도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나 여기 있으니 내 뜻이 담긴, 내 천재성과 예술혼이 담기 이 시를 한번 분석해 보아라'라고 한다면 어쩔 것인가. 저 높은 곳에 있는 시에 도달하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이 있기야 있겠지. 하지만 몇이나 되겠는가. 역시 '시는 어려워'라며 처음부터 포기하거나 길을 돌아서 가는 사람이 속출할 것이다.



여기, 고상하게 버티고 있는 에베레스트산보다 더 높은 시의 정상에서 내게 손을 내밀며 미소 짓는 셰르파(Sherpa) 시인이 있다. 나태주 시인의 어록을 따라가다 보면 그분의 철학이 느껴지고 삶의 결이 보이는 듯하다. 때로는 내 안에서 잠들어 있던 시에 대한 사랑을 깨닫곤 한다. 오늘 그분의 책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에 대한 언급을 읽었다. 우리는 시를 통해 반성의 계기를 만나고 그러한 시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게 된다고(134쪽/『너를 아끼며 살아라』 중에서). 바로 그 순간 기억의 스위치가 켜졌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떠올랐고 그 시를 처음 대했을 때 얼마나 놀라고 나 자신이 부끄러웠는지가 생각났다.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유고 시집(1941년) 중에서




그러고 보면 나는 시를 전혀 모르지 않았다. 좋아하는 시가 없지도 않았다. 시의 주제나 운율, 형식, 고어의 문법에만 매달려 시험 재료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시 자체를 음미하지 못하고 억지로 파악하거나 외워야 하는 수단으로만 보았다. <서시>를 찾고 다시 읽으며 배경으로 나온 밤하늘의 별을 상상한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배경으로 두고 쇼팽의 녹턴 2번을 들으며 <서시>를 읽는다면 행복할 것 같다. 부끄럽지만 용기가 날 것 같다. 희망을 지니고 다시 일어나고 부끄럽게 살지 않기 위해 좀 더 힘을 내야겠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좀 더 친절한 내가 되기 위해.



『서시』하면 떠오르는 구절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을 자주 꼽지만 오늘은 마지막 행이 눈에 머문다. 별이 바람에 스치는 게 상식적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보통 바람이 움직이고 별을 스쳐 간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별은, 물론 움직이는 행성도 있지만 지구에서 볼 때 한참을 머물러 있어 보이니까 말이다. 별의 속도와 바람의 속도는 다르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별은 움직이는 듯 말 듯하면서도 위치가 바뀌어 있다. 하늘 전체를 망토 삼아 저만치 가 있다. 그러는 동안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바람을 만나기도 했을 터이다. 별의 느린 속도와 바람의 빠른 속도의 만남은 결국 우리 인생의 수많은 인연을 말하는 게 아닐까.



오늘도 그의 시가 내 마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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