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꽃을 꺾기 위해서 가시에 찔리듯
사랑을 구하기 위해서는 내 영혼의 상처도 감내하겠네.
상처받기 위해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상처받는 것이기에
조르주 상드의 시에서
세상에 상처를 받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상처를 받을 걸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은 있나 보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조르주 상드. 그녀는 폴란드의 작곡가,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린 쇼팽의 연인이었다고도 한다.
처음에 이 시어를 읽고 차디찬 얼음물을 마셨을 때의 감각을 느꼈다. 짜릿한 깨달음과 애매한 두통 같은 아픔, 가슴 벅찬 파도를 얼굴에 맞아 잠시 숨이 안 쉬어지는 감각 그 어디쯤. 잠시 충격을 추스르고 생각해 본다. 왜 멈추었는지를.
일부러 상처를 받기 위해 사랑하는 자학은 아니지만, 상처를 받을지라도 사랑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시인은 그 사랑이 지속될수록 상처받는다는 것을 알지만 인내하고 사랑한다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리라. 그녀와 쇼팽의 관계가 궁금해졌다.
노르주 상드. 그녀의 필명이다. 1804년 생으로 본명은 아망틴 뒤팽(Amandine Dupin)이다. 19세기 초의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처럼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힘든 억압의 시대를 겪고 있었다. 결혼했지만 남편과의 불화로 결국 이혼했으며 필명으로 작가 생활을 하던 중 연하의 음악가 쇼팽을 만났다. 무려 8년을 연인으로 지냈지만 그와의 사랑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나 보다.
'상드의 표현에 따르면 쇼팽은 모든 아름다움과 고상함과 미소에 감동하지만 잘못된 말 한마디나 애매한 미소 등에는 지나치게 상처받았던 여린 영혼의 소유자였다'(연합뉴스 2023년 12월 7일, 김용래 기자)
문득 쇼팽의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영상을 틀고 쇼팽의 음악을 연주하는 임윤찬 님의 영상을 틀었다. 자주 들어 본 차분하고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들려온다. 듣다 보면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과격하고 혼란스러운 곡조도 들리고 문을 쾅쾅 울리는 듯한 천둥소리도 들린다. 천재였지만 예민했던 한 음악가의 내면과 갈등, 상처가 들리는 듯했다.
나 또한 비교적 예민하고 약한 멘털의 소유자라 어느 정도 공감하며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읽어 나갔다. 쇼팽도 자신의 예민함을 극복하려고,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줄여주려고 싸우고 또 싸웠을까. 자신에게서 나오는 가시에 찔리고 상처받는 연인을 보면서 상처받았을까. 한 사람은 음악으로, 다른 한 사람은 글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면서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사랑은 용기가 필요하다. 서로 한 방향을 바라보는 사랑도 있지만 방향이 다르고 어긋나도 계속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랑.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그것이다. 나의 부모가 그러했듯 나 또한 나의 아이들을 대할 때 드는 마음이다. 둘 다 성인이고 독립을 하더라도, 언젠가 그들의 짝을 만나더라도, 부모가 된다 해도 나는 계속 사랑하고 상처받을 것 같다. 상처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상처받는 존재로서 말이다.
출처;위키미디아 George Sand by Nadar, 186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