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Utopia는 무척 오래된 개념입니다. 이상적이고 완벽한 세계를 뜻하는 이 말은 그리스어 '없는 장소'(ou-topos)라는 말에서 왔다고 하죠. 모두에게 최선이자 완벽한 선의 세계는 불가능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늘 이런 곳을 꿈꾸고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 가장 포기를 하지 않은 분야이지 않을까 싶어요.
디스토피아는 나쁜 사회, 불행한 곳 Dytopia을 뜻합니다. 유토피아의 반대개념으로 쓰이지요.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는 들어보기만 해서 잘 모르지만 허균의 『홍길동전』은 이를 다룬 소설임을 압니다.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1984』는 빅브라더가 궁금해 읽고는 사회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의식 있는 삶을 고민했던 기억이 있네요. 하지만 이는 제게 무지에서 하나 더 알게 된 지식 습득에 가까웠지 직접적인 실천과 깊은 성찰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유토피아든, 디스토피아든 전혀 오지 않는, 만날 수 없는 환상의 세계일까요? 제 느낌에 요즘은 많은 사람이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 같은 세상을 우려하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문형배 작가님의 에피소드 북토크 인터뷰를 우연히 들었습니다. 그분의 본업이나 정치 성향에 대해 다루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분이 하신 일은 나름 직업적 윤리와 소신에 따라 했으리라 믿습니다. 제가 그분에 대해 온전히 모르기도 하고요. 제가 기억하고 싶은 건 그분의 에세이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하신 말씀입니다.
세부 사항은 일부 틀릴 수도 있으나 대략 이런 내용의 에피소드였습니다. 아드님이 어렸을 때 일이랍니다. 중학교 때인가, 혼자 먼 곳을 다녀와야 했는데 버스를 잘못 타서 엉뚱한 지역으로 가게 되었다고 해요. 사정을 알게 된 한 어른이 당황한 중학생에게 돈 만 원을 주면서 집을 찾아가라고 했고 부모의 전화번호를 물어 안심하라는 말을 전했다고 하죠. 중학생 아들은 그 돈으로 집으로 가는 표를 산 후, 잔돈으로 음료수 하나 사 먹었고요. 어쨌든 생면부지의 어른 덕분에 작가님의 아들은 무사히 부모 곁으로 올 수 있었어요. 작가님은 깨달았대요. 그저 고마워하는 걸로 끝나지 않고 '세상은 이런 선한 사람이 있어 돌아가고 살 만한 것이라고요. 아무리 잘나도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니 자신도 선을 실천하고 최선을 향해 일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라고요. 그분의 책 『호의에 대하여』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띠지의 문구가 인상 깊더군요.
"내 주위에 불행한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종종 듣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는 않아요. 저 또한 '참 대단한 분이네. 좋은 일이다'라고 잠시 감동받고는 제 일상으로 돌아가 바삐 살곤 했으니까요.
말뿐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잠시 멈추고 제가 기억하는 친절의 사례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았습니다. 우리 부부가 외출을 했을 때 갑자기 비가 쏟아져 우산이 없던 사람들은 소리치며 뛰어간 날이 있었어요. 안드레아(남편)와 저는 우산이 있었지만 바로 앞에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는 우산이 없어 힘겹게 걸어가고 계셨지요. 안드레아는 제게 눈빛을 보내더니 바로 그 할머니께 우산을 드리며 쓰고 가시라고 했어요.
좀 더 오래전에 아이 교육 문제로 힘들어하는 제게 남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원래 아이는 3살까지 가장 귀엽고 예쁜 짓을 하면서 평생 효도를 다 한 거래."
그 말에 나도 '나의 부모님께 그런 존재였겠지. 내리사랑만 받는 철부지'하며 위로받고 잠시나마 마음을 다잡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그 경험과 말 덕분에 저는 조금 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일까요. 책을 읽고 번역을 하면서도 이런 친절과 세상의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참 좋습니다. 『장미와 물망초』(Roses and Forget-me-nots)도 그런 의미로 다가왔어요. 이 작품은 루이자 메이 올콧의 단편으로 우리에겐 『작은 아씨들』의 작가로 알려져 있지요. 영화로도 사랑받은 이 작품 외에 작가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단편을 쓰기도 했답니다.
차 한잔 마실 시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짧은 소설 『장미와 물망초』 어떠신가요. 소녀들의 이야기이지만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의 이야기이지만 세월을 넘어 어른의 모습과 성장을 볼 수 있는 어른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여자들의 이야기이지만 남자들이 읽어도 좋은 브로맨스 같은 소설입니다. 『왕자와 거지』, 『행복한 왕자』를 좋아하셨다면 더욱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원더』라는 책과 영화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요. '옮음과 친절 사이에서 친절을 선택한다'는 문구로 유명하지요.
그러고 보니 세상은 살기 힘들고 혼란스럽지만은 않은 듯해요. 전쟁이나 기아, 세대 차, 빈부격차, 범죄와 오류도 많지만 어디선가 묵묵히 일하는 사람, 대가 없는 친절을 베푸는 사람, 경험은 하지 못했어도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고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세상은 살기 힘들고 혼란스럽지만은 않은 듯해요. 전쟁이나 기아, 세대 차, 빈부격차, 범죄와 오류도 많지만 어디선가 묵묵히 일하는 사람, 친절을 베푸는 사람, 경험은 하지 못했어도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고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있잖아요.
이 작품에 펼쳐진 작은 친절이 나비효과가 되어 어떤 인연이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친절을 베풀기 조심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괜히 오지랖을 떠는 것 같기도 하고 오해를 받을까 걱정을 하기도 하죠. 그래도 작은 용기를 내어 거절을 당하더라도 최소한 내가 받은 수많은 친절을 다시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장미와 물망초』는 언뜻 조금은 촌스럽거나 서양의 신파극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보통 사람의 선과 친절이 모여 보다 아름다워지지 않나 싶어요. 유토피아는 아닐지라도 디스토피아의 모래처럼 스러지지 않는 흙이 되고 꽃이 될 테니까요.
친절이
친절의 문학이
친절의 독서가
친절의 가치가
널리, 오래도록 유행하길 바랍니다.
호감, 친절, 다정, 배려, 천사, 영웅, 이름은 다르지만 모양은 다르지만 어쩌면 하나의 대상을 가리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휴식의 시간에 혹은 버스를 기다리며 두꺼운 장편의 부담을 덜고 『장미와 물망초』, 친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지 않으시겠어요? 저의 작은 안내가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자 보통의 영웅에게 미소를 안기기를 바라며 세 번째 번역서 『장미와 물망초』를 소개합니다. 행복한 가을날 보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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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물망초> -출처: 예스 24
루이자 메이 올콧의 단편소설 《장미와 물망초》는 사랑과 친절, 그리고 잊지 못할 인연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추운 비 내리는 날, 모자 심부름을 하던 가난한 소녀 리지는 한 송이의 장미를 보고 유혹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 사건은 부잣집 소녀 벨과의 뜻밖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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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감독그레타 거윅출연시얼샤 로넌, 엠마 왓슨, 플로렌스 퓨, 엘리자 스캔런, 티모시 샬라메, 메릴 스트립, 로라 던, 밥 오덴커크, 루이 가렐, 제임스 노턴개봉 2020.02.12.
장미와 물망초저자루이자 메이 올콧출판북도슨트발매 2025.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