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에게 배웠다면 물리를 다정하게 대했을 텐데
유시민/알쓸신잡 3에서
『떨림과 울림』이란 독특한 제목이 주는 진동이 있다. 책의 띠지에 소개된 유시민 작가의 한 줄 문장은 알쓸신잡의 과학자가 아닌 다정한 철학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파동으로 누군가에게는 큰 울림으로 다가올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우주는 떨림이다. 정지한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 수천 년 동안 한자리에 말없이 서 있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떨고 있다. 그 떨림이 너무 미약하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미세한 떨림을 볼 수 있다. (중략)
소리는 떨림이다. 우리가 말하는 동안 공기가 떤다.
빛은 떨림이다. 전기장과 자기장이 시공간상에서 진동하는 것이다.
5쪽/『떨림과 울림』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는 세상은 철학이나 인문학, 심지어 건축학에서 바라보는 입장과도 꽤 다르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배우고 믿었던 개념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소리는 진동이고 빛은 파동과 입자 운동을 동시에 하는 또 다른 진동이라는 건 그나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정지해 있는 물체, 가만히 있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피라미드와 같은 건축물도 실제로는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는 존재라니. 아무리 슈퍼 현미경으로 바라본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에 한 술 더 뜬다. '진동'은 일종의 '떨림'으로 인간은 세상의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고. 그래서 인간은 울림이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적어도 이 책의 제목이 어디서 왔는가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책을 읽어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거의 다 읽어갈 무렵 강연 일정과 북토크가 있어서 복습하듯 미시세계의 원리와 물리법칙,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강연 전에 개인적으로 EBS 다큐에서 비슷한 주제의 강연 일부를 들었는데 작가님은 그곳에서도 진동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셨다. 대상은 피라미드가 아니라 영국의 버킹엄 궁전을 지키는 근위병의 엄숙한 모습과 표정이었다. 누가 봐도 움직이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 역시 진동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는 세상의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말을 방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수소, 산소, 탄소 등 인간 몸의 모든 물질은 원자와 분자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는 진동하거나 움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리학에서 완전히 '정지해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진동은 차갑지만 떨림은 설렌다. 진동은 기계적이지만 떨림은 인간적이다.
7쪽/『떨림과 울림』
다소 시적 대구로 시작하는 제목에서 좀 더 들어가 보면 이 책의 목차가 우리의 마음을 다잡게 한다. 크게 4부로 나뉘고 각각의 큰 주제를 제시한다. 그 안에서 다뤄야 할 작은 소제목은 한 번쯤 들어 본 개념도 있고 전혀 감이 오지 않는 용어도 있다. 목차만 본다면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고 싶기도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인내심을 갖고 조금씩 읽어가다 보면 반복되는 개념과 설명이 철학과 비유의 양념을 접착제 삼아 차근차근 독자를 안내한다.
1부 분주한 존재들-138억 년 전 그날 이후, 우리는 우리가 되었다
2부 시간을 산다는 것, 공간을 본다는 것-세계를 해석하는 일에 관하여
3부 관계에 관하여-힘들이 경합하는 세계
4부 우주는 떨림과 울림-과학의 언어로 세계를 읽는 법
초반 빅뱅의 우주 탄생부터 고전 역학을 다루며 뉴턴의 운동법칙을 설명하고 차차 원자나 전자와 같은 미시세계를 다룬다. 책의 초반 메모와 그림을 그리며 이해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완독 후 다시 책을 펼쳐보니 가장 많이 그린 그림이 원자와 전자,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쿼크 등 지금까지 가장 작은 요소로 밝혀진 개념이었다.
물리학의 큰 줄기 두 가지를 고르라면 고전 역학과 양자역학이다. 고전역학은 거시 세계를 다루고 대표 이론으로는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있다. 하지만 이 법칙으로는 작은 입자들의 세계나 운동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양자역학이며 원자, 전자, 광자와 같은 극도로 작은 입자 세계를 다루는 것이다. 대표 이론에는 슈뢰딩거 방정식, 불확정성 원리 등이 있다. 필자가 저자의 사인을 받을 때 함께 받은 문구 역시 후자의 대표 방정식 'H Ψ = E Ψ'였다. 다시 말해 파동함수 Ψ가 해밀토니안 H의 작용을 받으면 그 결과는 원래 파동함수 Ψ에 에너지 E를 곱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책에 나온 양자 역학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필자 역사 이 모든 특성이 다 이해 가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나마 뭔가 뇌 속에 남아 꿈속에서라도 이해의 자국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시냅스를 타고 뉴런에라도.
소재 곳곳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저자의 노력과 유머, 사유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가령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및 블랙홀을 설명하면서 영화 <인터스텔라>를 끌어오기도 하고 우연과 확률, 복권의 상관관계를 언급하기 위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바빌로니아의 복권』을 소개하며 또 다른 책에 흥미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맥스웰의 방정식, 원자보다 더 작은 양성자, 중성자라는 입자로 이루어져 있음을 넘어 더 작은 입자가 있음을 배우는 계기를 얻기도 했다. 바로 쿼크(quirk)라는 입자이다. 그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발견했으며 원리도 모르지만 새로운 뭔가를 알게 되는 기쁨은 적지 않다. 적절하고 흥미로운 예시나 설명도 풍부하지만 마지막 간결한 요점 정리와 결론이 말끔하게 구성되어 있다. 전자기기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제시한 부분을 보면 이렇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은 알아도 맥스웰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뉴턴은 물리학의 토대를 세우고 아인슈타인은 그것을 뒤집었다. 맥스웰은 현대 문명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184쪽)
마지막에서는 얼핏 객관성과 증거만을 중시하는 듯한 과학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탈리도마이드 스캔들'(기형아와 수면제의 상관관계)나 '가습기 사건'(우리나라)을 들며 합리적 의심과 증거에 입각한 결론의 중요성을 제시하면서.
그렇다고 저자는 과학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맹신론도 경계한다. 이는 책이 아닌 강연을 직접 들으며 더욱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과학, 그 자체를 바꿀 수 없지만(확실히 밝혀진 것만을 믿으므로) 인문학은 인간을,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상하며 우주에서 고립된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하니까.
떨림과 울림(큰글자도서)
김상욱2021동아시아/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