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쿠팡 주문을 자주 하는 편이다. 요리를 즐기지 않는 탓에 냉동식품부터 과일, 식재료, 필요 용품 등 많은 물건과 음식을 구하기 위해서. 음식 조리에 정성을 쏟는 사람의 기준에는 무척 유감스러운 상황일 수 있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한정된 시간에 장보고 요리에 시간을 들이는 대신할 일이나 하고 싶은 분야에 집중하는 편이다.
쿠팡이 도착했다. 식품의 경우 신선도를 위해 드라이아이스나 아이스팩이 잔뜩 끼워져 있었다. 순간 주문품만 얼른 꺼내고 식품용 택배 주머니만 밖에 내다 놓고 싶었다. 잠깐의 수고도 번거롭게 느껴지는 이기심이 발동했나 보다. 잠시 생각하다가 과거, 어느 택배 기사분의 말씀을 떠올리고는 마음을 고쳐먹는다. 가위를 가져와 아이스팩을 다 꺼내고 입구를 잘라서 녹이기 시작한다. 몇 시간 후 다시 물을 빼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다. 하지만 나의 부주의가 어느 근로자들의 잉여 노동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스스로를 달랜다.
'이것도 돕는 거야. 그분의 시간과 수고를 덜 수 있어.'
언젠가 우리 부부(안드레아와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한 여성 택배 기사분을 만난 적
이 있다. 아마 주말이었을 것이다. 사교성이 풍부한 안드레아가 그분의 수고에 감사하는 인사를 건넸다. 부끄러움이 많은 나는 그제야 추임새를 넣어 함께 인사했다.
'그러게요. 주말인데 고생이 많으시네요.'
그러다 아이스팩 이야기가 나왔다. 배달 못지않게 힘든 일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배달 전 택배 집합소에 가면 배송 상자에 아이스팩이 그대로 들어있어서 팩 처리와 제거 작업이 추가 업무처럼 쌓여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무심코 필요물품만 꺼내거나, 아이스팩 내부 물질이 모두 드라이아이스라 오해해서 그대로 방치한 채 내놓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부부는 그때 처음 알아서 깜짝 놀랐다. 드라이아이스도 있지만 대부분 얼음으로 채워진 아이스팩이어서 녹인 후에 버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플라스틱 비닐로 분리수거해야 하긴 하지만 대신 그 작업을 다시 택배 근로자에게 전가할 필요는 없다. 소비자의 작은 관심과 노력, 수고만 들인다면 말이다.
이날 처리해야 할 아이스팩은 총 세 개였다. 두 개는 얼음물 아이스팩, 하나는 드라이아이스. 물론 드라이아이스는 잘못하면 화상이나 동상, 극단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얼음팩은 아직 꽁꽁 얼어서 바로 처리가 힘들지만 어서 녹으라고 가위로 살짝 윗부분을 잘라놓았다. 다 녹으면 물을 버리고 비닐만 따로 버려야 하니까.
이웃 사랑? 환경 운동? 솔직히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이왕이면 크고 위대하게 해야 할 것 같아서이지 않을까 싶어서. 사실 세상에는 슈퍼맨처럼 드러나는 영웅보다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영웅들이 더 많다.
어쩌면 이런 게 이웃 사랑의 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영웅처럼 나타나 거창하게 큰돈을 기부하거나 생명을 구하는 소수의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그런 한계 자체가 나와 타인을 구분하고 오히려 봉사의 마음을 막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효과는 없을지라도, 표는 안 나더라도, 당장 돈이 되거나 내게 이익이 되는 건 아니어도, 높은 조회수를 이끌 광고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날 엘리베이터에서 용기를 내어 우리 부부에게 사정 이야기를 해 주신 택배 기사분이 고맙다.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도움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다. 누군지 모르나 우리 집에 필요한 물품을 배달해 주셨고 나 또한 작은 처리로 잔업의 무게를 몇 그램 덜어드렸다. 몇 그램, 몇 초 정도의 낭비를 줄인다고 별다른 효과는 없겠지만 이런 마음으로 행동하는 이용자가 많아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누군가의 야근이 줄어들 수만 있다면.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봉사의 마음과 행동이 쌓이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가위를 들었다. 내가 자르는 건 아이스팩이 아니라 스멀스멀 올라오는 귀찮은 마음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