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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다 만난 인연, 야옹이

by 애니마리아


병원 일정이 있어 외출한 날이었다. 녹내장이 있어 평생 약을 타야 하는 운명이기에 안과에 갔다. 3개월치 약을 처방받고 약봉지만 한 아름 들고는 근처 미용실에 들렀다. 내 차례를 잠시 기다려야 하는 상황 나는 짐을 탁자에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미용실은 고양이가 몇 마리 돌아다니는 곳으로 다닌 지 오래되었지만 직접적으로 고양이를 접촉한 적은 없었다. 미용실의 고양이를 어떻게 부르고 대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그래도 그 고양이를 볼 때마다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한 번 쓰다듬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서.



고양이를 키운 적은 없어도 가끔 고양이와 가까운 삶을 상상하곤 한다. 가까이해 본 적이 거의 없어서 고양이가 신비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첫째가 어렸을 때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안드레아(남편)는 정색을 하고 손사래를 쳤다.



'나는 개는 몰라도 고양이는 도저히 못 키우겠어. 우선 눈이 너무 무서워. 게다가 개처럼 애교도 없어. 쌀쌀맞고.'



안드레아는 작은 새끼 고양이의 투명한 구슬 같은 눈은 예쁘지만 간혹 붉은빛, 혹은 노란색의 눈빛이 쳐다보면 공포를 느낀다고 했다. 그 마음이 이해는 가면서도 아이의 아쉬워하는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결국 키우는 건 포기했다. 개든, 고양이든 엄청난 책임감이 뒤따르는 일이고 개에 비해 훨씬 많이 빠지는 고양이의 털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고양이도 고양이 나름이라 애교 많은 고양이도 있다는데, 내겐 가까이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바라만 볼 뿐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고양이를 보게 되거나 키우는 사람의 사진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무심한 듯 관심을 드러내는 고양이의 걸음걸이, 표정, 관련 용품 등을 보면 주인과의 유대감이 부럽기도 하다.



인스타그램 친구나 블로그 이웃의 반려묘 사진 및 영상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다 최근 들른 미용실에서 한 멋진 고양이와 인사하는 기회가 있었다. 전에는 그저 지나가기만 하거나 멀리 한구석에 앉아 있는 모습만 보았는데 이날은 내가 앉은 탁자 주변을 거닐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안녕, 야옹아.'하고 인사를 건넸다.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파악은 안 되었지만 내게 시선을 건네는 듯했다.



자리에 앉아 내 차례를 잠시 기다리는데, 고양이가 다가왔다. 한 달 전에 본 나를 기억하는지 피하지 않고 곁을 내주는 고양이를 보니 더욱 반가웠다. 이름은 모르나 모습은 마치 페르시안 고양이처럼 이국적인 모습과 얌전한 자태가 매력적인 동물. 내게 달려들지는 않아도 내가 가져온 약봉지에는 관심을 드러냈다. 마음 같아서는 간식이라도 주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줄 게 없었다. 그저 작고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넬 뿐.



사르륵, 사르륵. 비닐을 건드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데도 점점 과감해지더니 비닐봉지 입구 안으로 얼굴을 들이대며 냄새를 맡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어이가 없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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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나 고양이가 놀랄까 봐 읽던 책을 건들지도 못하고 그저 고양이에 시선을 보내기만 했다. 고양이는 비닐봉지에 이어 내가 읽던 책에도 관심을 보이며 냄새를 맡았다. 킁킁? 이런 말을 개가 아닌 고양이에게 써도 될지 모르겠다. 왠지 고양이에게는 다른 의성어나 의태어를 써야 할 것만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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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다시 자리를 옮겨 약봉지를 이리 씹고 저리 씹어 본다. 맛은 없을 터인데. 원래 성격이 낯선 이에게도 순한지 내게 편안함을 느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편안하게 나와 내 물건을 대하는 고양이를 감상할 뿐. 지루할 수 있는 기다림의 시간을 재미있게, 잠시나마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 고양이에게 감사하다. 관심은 있으나 키울 수는 없는 동물이 먼저 내게 다가와 나의 호기심을 채워주고, 글감과 감사할 거리를 준 고양이에게. 잠시나마 소녀가 된 기분으로 동경하던 동물을 가까이하게 되었으니.



'야옹아, 다가와 주어 고마워. 쓰담쓰담을 허락해 주어 감사해. 다음에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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