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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딴짓하기 2(트렌드 코리아 2026과 수세미)+

by 애니마리아


이 책을 읽다 보면 불완전한 뼈대에 살을 덧붙이는 느낌을 받는다. 혹은 찰흙으로 작품을 만들 때, 내가 알지 못했던 구조를 알게 되어 새로 추가하거나 기존에 있는 뼈대를 다시 변형하기도 한다. 올해 대한민국을 스쳐 갔거나 지금도 진행 중인 트렌드를 뒤늦게나마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느림은 나의 정체성 가운데 하나가 된 지 오래다.



2025년을 다루는 1장에서 '번아웃 시대에 극복하기'라는 주제로 키워드 세 가지가 있었다. 귀여움, 물성매력 등을 제시한다. 해마다 유행 코드는 있었지만 올해 대한민국에서는 특히 작고 귀여울수록 사랑받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라부부(拉布布) 인형'이다. 인터넷 쇼핑을 하며 몇 번 본 게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홍콩에서 만든 봉제인형 캐릭터로 사진을 검색하고 나서야 알았다. 인형 뽑기 등으로 가방에 이것저것 매달고 다니는 학생들의 이미지가 떠올랐으니까.



시대는 달라도 내가 아주 어린 시절에도 너도나도 했던 유행 놀이는 있었다. 딱지, 구슬, 만화 캐릭터, 종이 인형 모으기, 포켓몬 등등. 과거에는 외국에서 뭔가가 들어와 유행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K 콘텐츠 바람을 타고 이곳에서도 유행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얼마 전 'K-pop 데몬 헌터스'를 보고 한동안 영화의 OST를 즐겨 들었다.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옆에서 지켜보던 안드레아가 영화 캐릭터 카드를 어디서 구해왔다. 그 정도로 빠진 건 아니었지만 남편의 센스와 관심에 피식 웃음이 나온 건 사실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 책의 물성매력이라는 용어를 접하고 나서, 나도 모르게 두 번째 특성의 흐름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현실과 디지털의 경계가 흐려지는 불확실한 시대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첨단 기술보다는 손에 닿는 무게와 질감이 주는 물성의 안도감, 물성매력인 것이다.




78쪽/『트렌드 코리아 2026』







지난달 10월 31일 핼러윈 행사를 치른 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없어서 못 판 복장이 'K-pop 데몬 헌터스'관련 상품이라고 한다. 가상 캐릭터의 인기가 실제로 만지고 경험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 것 또한 이러한 물성매력에 빠져, 그곳에서 기쁨이나 안도감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성을 표현한 것이니 참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신용카드와 수세미'에서조차 귀여움을 추구(76쪽)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미국 스타트업 제품인 '스크럽 대디'라는 수세미가 미국 MZ 조차 사로잡아 히트를 쳤다 하니 어떤 모양이고 재질인지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다. 단순하고 귀여운 표정, 스마일과 원색의 스펀지 재질이 눈에 띄었다. 평소 아크릴 수세미를 즐겨 쓰지만, 이 부분을 읽은 날 나는 충동구매를 시도했다. 과연 '스크럽 대디'는 우리나라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것도 여러 종류와 구성으로.



며칠 후 스크럽 대디가 도착했고 바로 사용해 보았다. (광고는 아니다) 혹시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개인적으로 사용감이 괜찮았다. 기존의 아크릴 소재와 병행해서 사용하면 지루함도 달랠 수 있을 것 같다. 책 외에 사재기나 충동구매를 잘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기존의 편견이나 닫힌 생각에서 벗어나듯, 기존의 내 생활 패턴에서 벗어나 이런 작은 모험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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