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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갈등, 그리고 어휘

(CITY OF NIGHT BIRDS)

by 애니마리아


연인 사샤를 받아주는 조건으로 러시아에서 프랑스 발레단 활동을 수락한 나타샤. 그녀는 사샤가 함께 참석한 파티를 전후로 삐거덕거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을 은근히 따돌리며 무시한 여인들에 대해 속상해서 털어놓는다. 하지만 사샤는 이런 고백을 다소 삐딱하게 받아들이며 나타샤의 약점을 비꼬듯이 대응한다.



'자기는 항상 비판적이야. 누구든 만족스러워하지 않지. 게다가 나타샤, 당신은 자신이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낫다고 생각하잖아.'

사샤는 눈알을 굴리며 (샴페인) 잔을 쭉 들이켰다.

'And you're judgemehtal. No one's good enough for you. You think you're better than everybody, Natasha.'

He rolled his eyes and took a swig of his drink.

p. 206/『 CITY OF NIGHT BIRDS 』



나타샤가 그랑프리를 따며 정상에 오르기까지 가장 큰 동력이었던 사샤. 그는 단순히 그녀가 넘어야 할 산 이상의 존재였다. 소위 '넘사벽' 같은 경쟁자였고 이기고 싶은 선배였으며, 동시에 강렬하게 끌린 나머지 자신에게 헌신한 첫 연인, 세뇨자와 헤어지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프리마돈나가 되기까지 먼저 다가와 그녀와 친구가 되어 외로운 적응 기간을 도왔고 마침내 연인이 되었다. 실력은 물론 외모도 뛰어난 두 사람은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어 보이는 세기의 커플이나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흐름 속에 갈등과 상처가 늘어나는 건 비단 오래된 부부만의 문제가 아닌 걸까. 차갑고 외로운 발레리나 나타샤가 하필 마음을 터놓고 속내를 털어놓는 순간, 사샤는 평소답지 않게 차가운 냉소를 보낸다.



그녀의 아픔을 하나씩 읽어가며 더욱 눈에 띄는 어휘들에 눈길이 간다. 안타까우면서도 진지한 장면이었는데 유독 읽기 힘들고 더뎠다. 단순히 생소해서만 은 아니다. 러시아식 배경 표현과 어휘도 까다로웠지만 프랑스로 배경을 옮긴 요즘, 프랑스식 발레 용어와 표현이 많아져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the Paris Opera 파리 오페라 좌, 1669년 설립된 파리 오페라 좌의 제16번째 극/파리 오페라 극장

=l'Opera de Paris


etoile 주연 배우

prima ballerina 포함

Mec 남자, 사내, 남자친구, 영어의 guy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속어

Place des Vosges(플러스 디 보주) 보주 광장/파리 마레 지구 3~4구 사이)

pastis 파스티스(식사 전 술) 아니스 열매 향이 나며 불어에서 옴.

enchante(앙샹떼) 마법의, 매력적인, 매혹적인



영어는 온갖 영어가 섞이며 진화한 언어지만 가끔 어디까지 영어고 어디부터 검색해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영어사전에 있으나 불어에서 왔다고 하면 뜻이 있기도 하지만 아예 검색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AI나 아예 프랑스어 사전에서 검색하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문맥상 이곳은 '아마 러시아일 거야, 프랑스어일 거야' 하며 추측하기도 하지만 모든 책이나 자료가 이렇게 친절한 건 아니다. 애매한 단어가 나올 때마다 멈추고 읽을 수는 없다. 가독성도 떨어지고 재미도 없어지기 쉬우니까. 하지만 너무 궁금해서 멈추고 조사하고 때로는 알아도 더 깊게 파고드느라 진도가 더욱 느려진다. 그래도 감사해야겠지? 그렇게라도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으니.


원서를 읽으며 어휘도 익히고 장면에 푹 빠지기도 하고, 잠시 머리를 식힌다며 검색과 생각의 블랙홀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마지막 단어 bunion과 표현 develop a bunion(건막류가 생기다)를 익히며 나의 발가락을 바라본다. 점점 휘어가는 게 예사롭지 않다. 90이 다 되신 엄마가 요즘 류머티즘으로 손가락이 점점 굽어진 현상이 떠오른다. 나이가 들수록 인체의 뼈도 고목처럼 구부러지는 게 슬프고 두렵다.



'나도 무지 외반증이 있는데. 발레는 안 하지만 점점 안으로 파고들며 고통이 커지려나, 나타샤처럼?'


오늘도 단어 하나로 나탸사와 현실을 오갔고 묘한 감정과 연민을 느꼈다. 그래도 긍정 에너지를 뽑아 본다. 배움의 기쁨을 느끼며 감사하는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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