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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코노미'-배움의 기록(트렌드 코리아 2026+)

부제:필코노미(The Feelconomy)

by 애니마리아


과거, 감정이란 자기도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주관적인 영역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현대인들은 자신의 기분을 마치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관리 대상으로 여긴다.
160쪽/『트렌드 코리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워낙 경제가 중요한 개념이다 보니 많은 분야에 '이코노미'를 붙여 사용하는 용어가 심심찮게 들린다. 펫코노미, 실버이코노미, 그린이코노미, 공유이코노미, 리셰이핑 이코노미, 경험이코노미,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팬이코노미, 이코노미는 아니지만 특정 정치인과 경제라는 용어를 합쳐서 '아베노믹스(아베 신조+economics)'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 책에서 감정을 나타내는 필(feel)과 경제를 의미하는 이코노미(economy)를 붙인 개념을 보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이성처럼 감정이나 감성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는 생각과 우려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한편, 감성은 식품, 주거와 같은 상품뿐만 아니라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기술까지 적용되어 이미 우리 경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고 놀랐다.





기분이 소비의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구매의 주요 동인이었던 필요, 의미, 경험에 더해, 기분이나 감정이 소비를 이끄는 주요 목적으로 부상한다. 식품, 주거, 심지어는 기술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에서 기분은 경제를 움직이는 현대사회의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159쪽/『트렌드 코리아 2026』




이 주제의 핵심은 소비자의 기분과 이를 둘러싼 새로운 벌집 같은 경제의 연결이다. AI와 같은 기술의 발전은 효율의 극대화를 추구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인간에게만 있는 감성을 대변해 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feel(느끼다)과 economy(경제)를 합친 용어가 좀 무리이지 않나 싶었는데, 이미 우리 생활에서 드러난 현상의 예시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웃다'와 '슬프다'가 합쳐진 '웃프다'가 유행한 지는 이미 오래다. 나 또한 서평이나 에세이를 쓸 때 가끔 이 어휘를 쓰며 딱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양가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는 이뿐이 아니었다. "네니오", "좋은데 싫어", "텅 빈 하루였는데 충전된 느낌이야"(161쪽)과 같은 말은 세대를 넘어 요즘 세상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얼추 한 번쯤 들어본 내용이었다. '기분'을 반영한 시장은 이미 어마어마하게 커져있었다. 기분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앱 사용자가 2023년 대비 올해 상반기만 200만이 넘었다고 한다. 자신이 왜 우울한지, 왜 슬픈지 파악조차 하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기분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인간은 옷, 음식과 같은 필수 요소부터 영화, 서점과 같은 문화생활의 방향을 결정한다. 일명 '기분 큐레이션'이 차별적인 상품으로 나온 것이다.



술집에나 카페에 가면 실제 음료의 종류가 아니라 기분이 메뉴로 나온다. 가령 '설렘, 그리움, 짜증'이 잔에 쓰여 있고 맞춤형 차(tea)를 추천하기 위해 '기쁨, 슬픔, 즐거움, 미움'에 따라 차를 제안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읽고 있던 책 『 City of Night Birds 』(밤새들의 도시)에서도 연인과 다툰 나탸샤를 위해 맞춤 칵테일을 권한 바텐더의 언행이 떠오른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기분은 AI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중요한 기준점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심지어 기술 영역에까지 적용된다니 어떤 경우가 있을까. 작가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제품을 소개한다. 스마트 워치나 링이 심박수나 뇌파를 통해 기분을 파악하고 단순히 건강 정보 이상의 피드백을 준다. 사람의 억양, 어조, 떨림까지 분석해서 만나는 사람이 얼마나 불편한 상대인지 알려주어 명상이나 회피, 관계 단절 등의 피드백을 권한다. 반대로 긍정적으로 수치가 진행되면 그 사람과 다시 만날 것을 권하기도 한다. 나도 모르는 나를 분석하고 도움을 주는 것 같아 놀랍지만 나의 몸과 정신을 모두 기계에 맡겨 점점 잠식당하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정신적 에일리언'에게 나를 맡기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필코노미 시대, 이제 나쁜 감정은 관리의 대상'(170쪽)이 되었다는 말이 깊게 남는다. 피부가 아닌 감정을 관리하며 부정적이고 불편한 기분을 무조건 피하고 없애는 게 과연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나 또한 평소에는 되도록 불편한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긴 한다. 하지만 영화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 2015>에서 나왔듯 때로는 슬픔, 분노, 두려움은 조절할지언정 분명 필요한 감정이다. 충분히 애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슬픔을 잘 보낼 수 있고 부당한 일, 억울하고 잘못된 일 앞에서 분노할 줄 알아야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으니 말이다.



기분과 관련된 우리 경제, 생활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이 외에도 흥미로운 게 많아서 나중에 한 번 더 다루려고 한다. 정리하는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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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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