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것이 글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내겐 독서가 중요한 루틴이다 보니 책에서 글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읽은 후뿐만 아니라 읽는 도중이나 읽기 전에 기대하는 심정으로 쓴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누군가의 지나가는 말을 듣고 좋다 싶으면 날아가기 전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안드레아(남편)가 업무의 일환으로 봉사 단체에 다녀온 날의 일이다. 기념품으로 가져온 때밀이 수건이 있었다. 재질은 대중목욕탕이나 찜질방 매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였지만 정작 나의 시선을 끈 건 문구였다. 만든 곳이나 기념일 정도만 인쇄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때밀이의 문구는 달랐다.
'누구나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자원봉사로 온기를 나눌 "때"입니다.'
이 글이 없었다면 실제 사용하기 전까지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아예 보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쳤을 테지만 한번 보고 나면, 여러 번 읽고 곱씹게 된다.
처음에는 동음이의어의 재치가 느껴져서 웃었고 두 번째는 '정말 그렇네' 하고 공감하며 읽었다. 세 번째는 말만이 아닌 뭔가 해야 하는데 기도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아 괜히 미안해하며 읽었다. 세상의 모든 슬픔과 비극에 참여하고 해결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는 없긴 하지만 나를 돌아보게 하는 글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이 많은지, 힘든 일이 있지만 더 힘든 일을 하고 고난의 환경에 처한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생각과 함께.
나태주 시인은 달라이 라마의 말을 인용하며 말했다. '불행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만족이다'라고. 어휘 자체로는 서로 반의어는 아니지만, 내 처지에 감사하고 만족하려는 태도의 신비를 말해준다. 행복하려고 너무 애쓴다는 것 자체가 자신은 지금 불행하고 힘듦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적절한 시기를 뜻하는 '때'도 중요하고 내게 묵혀진 때를 벗기는 작업도 중요하다. 각자 때는 다르지만 적기에 가장 찬란히 꽃 피울 수 있도록 기회를 준비하고 알아보는 시선을 지니길 희망한다. 육체의 때를 벗기는 것처럼 내 마음에 쌓인 오래된 때를 벗겨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과거는 이미 일어났고 수정할 수 없다. 아무리 깨끗이 씻었다 해도 때는 다시 생긴다. 오늘도, 내일도.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내가 만나는 사람과 일과 사이에서 새로운 때가 생기더라도 겁먹지 않기를. 지나치게 짜증 내지 않고 받아들이고 최대한 빨리 씻어내기를 바란다. 공감의 온기가 그 사이로 스며들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