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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CITY OF NIGHT BIRDS)

by 애니마리아


부제; 나를 멈추게 한 말, 그리고 글






내 입을 틀어막으려는 순간 이미 동물이 내지르는 듯한 비명 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터져 나왔다.
Animal cries escape my throat before I get a chance to muffle my mouth.
p. 272



무엇이 차가운 프리마돈나, 나타샤를 울리는가. 웬만하면 울지 않는 발레의 여왕을 무너지게 만든 원인이 무엇일까. 자신의 연인을 안 좋게 보았다는 이유로 절연을 선언했던 그녀의 엄마. 이제는 돌아가셔서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는 나탸샤의 현실은 죄책감과 후회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복잡한 역사가 있다. 둘 다 서로를 사랑했지만 사랑을 표현하는데 서툴렀던 모녀. 그들의 추억이 있는 곳, 옛집에서 나타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쓰나미를 겪고 있다.



아버지를 '니콜라이'라고 부르는 나타샤는 혹시나 그의 흔적이 있지 않을까 엄마의 물건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한 두꺼운 검은색 파일을 발견하고 연 순간 나는 그들의 사랑과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내게도 그런 분이 있었다. 다정한 사랑에 서툴러 가까운 관계였지만 평생 소통할 수 없었던 누군가가.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렸던 부분.



대신, 그 파일에는 모든 인터뷰와, 리뷰, 혹은 나에 대해 쓴 온갖 소개 글이 마린스키 학교를 입학한 시절부터 차곡차곡 모아져 있었다. 심지어 엄마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치른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의 내 은퇴식 기사까지도.
Instead, the file contains clippings of every interview, review or profile that's ever been written abou me, starting from when I first entered Mariinsky. The last piece about my retirement from Paris Opera is dated just a week before she passed away.

p.273




한 사람의 딸이자 엄마로서 나는, 이 두 사람의 어긋난 사랑을 이해한다. 나의 부모에 대해 느꼈던 사랑과 갈등, 딸을 향한 짝사랑, 다시 내 딸에게 내리사랑을 해야 하는 존재로서 감내해야 할 아픔까지. 상처를 주고받지 않으려 피하려 하기보다 소통을 하고 싶었을 그들의 흔적을 보며 나를 돌아본다. 정답 없는 관계의 미로를 한동안 헤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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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들의 도시

김주혜2025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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