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는 습관에 대하여

by 애니마리아


나는 원래 '잠순이'었다. 너무 잠이 많아 커피를 사발째 들이켤 만큼 믹스커피를 타서 마신 적도 있다. 그래도 아무 소용없다고 투덜댔다. 이후 몇십 년 동안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셨다. 그렇게 서서히 커피 중독자가 되었다.



편두통에 시달리며 결국 커피를 끊긴 했지만 여전히 커피에 끌린다. 물론 커피가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겠지만 두통 악화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짐작한다. 유전, 스트레스, 체질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런 내가 요즘 커피가 아닌 차로 아침을 시작하곤 한다. 티백을 열어 머그컵에 살포시 넣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순간이 짧은 명상의 루틴 되었다.



'아, 오늘도 평온한 하루가 되길. 나의 마음만은 평온으로 다스릴 수 있기를. 요동치는 순간 마음의 물결이 차분해질 때까지 인내할 수 있기를…….'



최근 가장 좋아하는 차는 타발론(TAVALON)의 루이보스(ROOIBOS BILBERRY)다. 100퍼센트 루이보스가 아님에도 퓨전의 가벼움이나 거부감이 없고 오래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알고 보니 루이보스, 빌베리, 블랙커런트, 감초와 당아욱 등이 섞인 블렌딩 허브티다. 좋은 차의 시작은 티백을 여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물을 넣기 전에 향을 충분히 음미하는 순간이다.



달콤한 향이지만 인공적이지 않고 구수하지만 투박하지 않다. 투박함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은은하게 감싸는 꽃 향에 착각을 일으킨다. 마치 커피 향의 환각에 빠지듯 차향의 환각에 속절없이 스며든다. 어서 차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뜨거워도 안 되고 너무 급하게 마셔도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한 모금 마셔본다.


'앗, 뜨거워!'


역시 혀를 대인다. 커피든 차든 급하면 다친다. 천천히 차가 스며드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차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와 관계라도, 심지어 가족이라도 본인의 향과 본성이 나올 수 있도록 기다려 주어야 한다. 우리는 때때로 이를 잊어서 혀를 데이기도 하고 흘리기도 하며 오해하기도 한다. 나와 이 차는 맞지 않다고 여기며 누군가와 코드가 맞지 않다고 쉽게 결론을 짓기도 한다.



포터의 물 버튼을 누르고 차의 봉지 한편을 뜯는 순간 안에서 나오는 향기가 후각을 자극한다. 벚꽃향이 느껴지는 차다. 꿀의 달콤함이나 견과류의 고소함과도 다르다. 둥굴레차처럼 은은한 구수함이 있으면서도 녹차를 마실 때의 텁텁함은 없다. 깔끔하면서도 모나지 않고 세련되면서도 푸근하다. 클래식의 기품이 섞인 듯하면서도 깍쟁이처럼 차갑지 않다. 따뜻한 기운이 사라지고 나서도 냉정하지 않다. 부담스럽지 않아 생각보다 많이 마시게 된다. 식고 나서도.



잠은 시작과 끝을 연결한다. 때로는 꿈이 그 사이 끼어들기도 한다. 몸이 깨어나는 속도는 대개 정신보다 느리다. 오늘도 의식이 깨어나는 시간, 몽롱함에 취해 있을 때 생각한다. '일어나야지. 우선 기도부터.'



주기도문, 은총송, 영광송으로 시작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소망과 다짐을 담은 화살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문득 '~해주세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식상함을 넘어 너무 영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현재 겪고 있는 걱정이나 문제에 대한 토로나 해결을 부탁하는 버릇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좀 다르게 기도를 드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평소의 습관, 평소의 버릇대로 기도하면 편하기는 하지만 진심에서 멀어지기도 하니까. 그저 기도했으니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내리는 선택에서 좀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 오늘도 깨어나는 기적을 경험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하루라는 큰 선물을 주셨네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평안과 건강을 지켜주세요. 제게 좋은 일이 생기면 감사와 더불어 겸손해야 함을 일깨워 주세요. 나쁜 일이 생기면 배움의 기회로 삼고 인내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좋은 것뿐만 아니라 안 좋은 것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현재에 충실하도록, 묵묵히 나아가도록 함께 하여 주세요. 질투나 반감, 분노가 일면 그것을 알아차리되 끌려다니지 않고 배움과 발전의 기회로 삼도록 다독여주세요. 무엇보다 내가 존중받고 싶은 것처럼 타인을 존중해야 함을 늘 기억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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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t, Pray, Love



2014 Bolinda 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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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t, Pray, Love



엘리자베스 길버트 2007 Penguin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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