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離巢)는 쉽지 않지만

by 애니마리아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일 년 만이라도, 아니 만으로 완전한 20살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함께 하길 바랐다. 나도 언젠가 아이의 이소를 각오하고 있었지만 서서히 준비하길 바랐다. 좀 더 시간을 두고 함께 그 시기를 조율하길 바랐는데. 아이의 시간은 부모가 생각하는 시간과 일치하지 않는가 보다. 그래도 아쉽다. 하지만 아이 말대로 이미 벌어진 일이다.



둘째는 첫째와 성격만 다른 게 아니다. 상황도, 성별도 다르기에 나는 부모로서 좀 더 보호본능이 더 강하게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라고 왜 아이의 독립을 마다했겠는가. 아이에 올인하는 헬리콥터맘도 아니고 그럴 깜냥과 체력도 안된다. 머릿속으로는 '부모는 아이의 독립을 위해 존재하는 거야.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독립을 돕는 게 부모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야'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입장이 되어 보라. 관계 속에서 생각과 다른 반응이 나올 때만큼 당황스러운 때가 있을까 싶다. 혼란과 방황은 사춘기를 지나는 청소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30대, 40대, 50대, 혹은 그 이후에도 여러 층에서 발생하는 삶의 무게와 맞물려 부모로서의 책임을 짊어짐과 동시에 성장을 향한 단계에 들어선다. 간간이 찾아오는 기쁜 순간, 행복한 추억, 짝사랑이나 다름없는 사랑의 감정으로 스스로를 치유하면서.



각자의 삶은 닮은 듯 다르다. 나의 아이가 타인의 아이와 다르다. 인생은 드라마나 강연자의 사례처럼 흐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아이도 처음 만나는 부모, 세상이지만 부모 역시 아이와 처음 만나 매 순간 뭔가를 해결하려고 발버둥 친다. 먼저 태어나 좋은 점 가운데 하나였던 경험과 지식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해줄 수 없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워낙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서 내가 겪은 경험이 현실에서는 더 이사상 적용하기 꺼려지는 생각, 낡은 생각으로 여겨질 때도 마찬가지다. 나 또한 아이 나이였을 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기성세대의 고집을 비판했기에, 아이들을 걱정하는 조언조차 꺼내기 망설여지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지금 하는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나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길 간절하게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의 자립을 향한 열망은 유난히 강했고 그렇게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혼자서라도 고생을 하고 싶다고. 그 마음이 이해는 간다. 해도 후회하고 안 하고도 후회하는 것이라면 해보고 싶었겠지.



'조금 아쉬워도 어쩔 수 없고, 후회되는 일이 있어도, 그것마저 이제는 아이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김종원의 '다 큰 자식은 이제 보내줘야 한다' 중에서







얼마 전 아이가 이런저런 짐을 챙기러 집에 들렀다. 할 말이 많았지만 우선 어설프게나마 아이를 안아주었다. 막상 얼굴을 보니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고 뭐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음식을 싸는 나를 보고 아이가 물었다.



'엄마, 이제 할머니 마음을 알 것 같아?'

'응. 그래도 엄마는 할머니처럼 너무 많이 음식을 싸지는 않으려고 해. 네가 원하는 만큼만 줄 거야. 김치, 이 정도면 되지?'



새끼 새를 이소 시키고 난 다음 어미 새는 과연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다. 이제 되었다고, 자신의 할 일은 다했다고 여기며 생명이 다 할 때까지 비행과 먹이활동을 하며 살아갈까. 아니면 그마저도 불필요한 감정이라 여기고 본능에 따라 살아 죽어갈까. 동물보다 감정이 풍부한 존재인 인간은 이소에 있어서도 훨씬 더 아련한 감정 변화를 겪는 건 분명하다. 동물들은 철저히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살아남는 새끼에게만 관심을 갖는다.



어느 강연에서 들은 고미숙 작가님의 질문이 마음의 잔상으로 남는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옛날에는 다수가 가난하고 살기 힘들었어도 우울증이 많지 않았어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풍족한 현대에 한국은 우울한 사람이 왜 이리 많은 걸까요? 제 생각에 누군가를 걱정하고 사랑하면 우울에 빠지지 않아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는 대답이었다.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건 내 문제와는 별도로 타인을 향해 신경을 쓴다는 뜻이다. 내 문제, 내 불행이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한 마음. 그것이 사랑이든 미움이든, 그 사이 어떤 애증이든 삶의 우울함을 누를 만큼 강력한 인간의 감정일 테니. 부모라고 왜 우울하지 않을까. 하루하루 커 가고 자신만의 인생을 꾸려나가는 아이를 보며 뿌듯하면서도 걱정을 놓지 못하는 존재. 혹여 아이가 잘못된 길을 가거나(부모 기준) 실수를 할 때, 본인의 잘못이 아닌 사고를 마주하게 될 때 그저 바라만 보기 힘들어하는 존재가 바로 부모다. 아이에게는 잔소리로 들리는 걸 알면서도 한 마디 더 하고 싶고, 미리 조언을 주고 싶어 한다.



뭔가를 미리 안다고 우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알면서도 때로는 해결하지 않는 것, 아니. 때로는 부모로서 일부러라도 해결해 주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 힘들다. 아이와 나, 모두가 그러한 마음을 서로 이해하며 힘든 시기를 잘 헤쳐나가길 바란다.



사랑하는 만큼 안타까워도 믿고 응원하는 부모가 되자고 다시 한번 다짐하며 오늘도 아이의 이름과 같은 식물에 물을 준다. '나의 글로리아,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길 바라. 하느님이 너를 지켜주실 거야.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 모두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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