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 한다

『 Daughters of the Dragon』

by 애니마리아

아, 적어도 궁금증 하나는 해결됐네. 입양 결정은 아이에 대한 사랑 때문도 아니었고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절대로. 내가 입양 대상이 된 건 나 때문에 생모가 죽었기 때문이다. 정말 멋지군!

15쪽/<용의 딸들 Daughters of the Dragon>


애나(Anna 한국 이름은 '수보')는 20년 전, 생후 5개월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사랑하는 양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상실감에 집안 분위기는 크게 변한다. 양아버지는 애나에게 여전히 소중한 아버지다. 하지만 아내를 잃은 그는 삶의 활력을 잃었으며 일하는 시간 외에는 슬픈 고독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멍하니 있을 뿐이다. 애나도 양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다니던 / 대학 / 진학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돌보며 방황하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의 뿌리를 찾아 양아버지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다. 자신이 맡겨진 기관에서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생모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만다. 애나가 기관 건물을 나와 혼자 있는 틈을 타서 어떤 할머니가 애나에게 접근하더니 수상한 꾸러미와 함께 주소를 남긴다. 이 할머니는 도대체 누구이며 애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무래도 저주받은 것만 같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미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수수께끼 같은 할머니를 찾아가는 모험을 감행할 것인가.



작가 윌리엄 앤드류스(William Andrews)는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서 살고 있는 광고 업계 임원 출신이다. 30년 넘게 카피라이터로 일했으며 15년은 자신의 광고 에이전시를 운영했다. 밤과 주말 시간을 주로 이용하고 일하는 중간에 시간을 내어 소설을 썼다. 빌(윌리엄)의 첫 소설은 'THE ESSENTIAL TRUTH'로 메이헤이븐 상을 수상했다. 그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알려진 한국에서 4개월이 된 딸을 입양한 것이다. 이후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세 권의 역사 소설을 쓰게 된다. DAUGHTERS OF THE DRAGON(용의 딸들), THE DRAGON QUEEN(용의 왕비), AND THE SPIRIT OF TEH DRAGON(용의 영혼, 레이크 유니언 출판사) BY LAKE UNION PUBLISHING)로 출간되었다. 또한 앤드류스는 이 소설로 '독립출판상(IPPY 2014)'도 수상하였다.



작품의 첫 장은 애나라는 인물이 생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실제 주인 / 공은 그녀를 찾아온 어르신 '홍자희'를 중심으로 다시 시작하는 액자식 구성을 띄고 있다. 소설의 내용을 바탕으로 추정하건대, 1929년생으로 보이는 자희의 14살 시절부터 2000년대를 훌쩍 넘은 현재를 오가며 자신의 일생을 풀어나간다. 독자는 그녀 파란만장한 일생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애나와의 인연과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통해 때로는 미스터리처럼 때로는 역사의 소용돌이처럼 펼쳐지는 대하드라마의 느낌을 받게 된다. 위안부로 끌려갔던 나이는 겨우 14살이었으며 이 시기는 바로 일제의 침탈 기이자 제2차 세계대전의 혼란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이후 광복과 6.25 전쟁의 비극, 남북 및 세계의 냉전, 60~70년대의 독재, 군부 정치, 80년대의 독재와 민주화, 경제 격변기를 지나 현대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굵직하고 무거운 사건의 흐름을 함께 한다.



후반에 마련된 작가의 말과 Q & A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의 대부분은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조사를 거쳐 완성되었다. 단, 작품의 제목에서도 나와 있듯 용(dragon)이라는 상징물의 특별한 의미가 역사와 작가의 상상이 결합하여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한다. 역사와 민족정신, 민간의 소망과 애증이 맞닿아 더욱 신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용은 동양에서 국왕을 대변했다. 단순히 힘이나 공포심을 조장하는 서양에서와는 달리 괴물보다는 나라를 지키는 수호신의 이미지가 더욱 강했다. 여기에 나오는 두 머리를 가진 용 무니 금빗은 나라뿐만 아니라 그 빗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운명, 영혼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수호신으로서만 작용하는 것에서 벗어나 소유자에게는 권리와 함께 그 빗을 지킴은 물론 용 빗이 부여하는 특별한 책임, 의무가 주어진다. 그 의무는 족쇄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희생을 각오하게 하기도 하며 때로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주인공으로 대변되는 우리 조상, 여인들의 고통과 억울한 삶을 따라가다 보면 이러한 구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자희는 아름답고 똑똑하며 불굴의 의지를 지녔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지로 그 비극에 빠진 건 아니었다. 일부 독자는 벼랑 끝에 몰린 그녀가 내린 선택에 수긍하면서도 왜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의문을 토로하며 반문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자희는 왜 다른 위안부처럼 자살하거나 더 싸우지 않았을까.


자희는 왜 북한 정권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는가. 왜 그들에게서 벗어나려 했는가. 그녀의 연인은 왜 북한군에게 끌려가 죽어야만 했는가.


남한으로 피신한 후 그녀는 왜 기지촌으로 가야만 했는가


자희는 그녀를 존중하는 크로포드 대령의 관심과 초대를 왜 끝까지 거절했을까


자희는 결혼과 안정이라는 멋진 삶, 자신의 딸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앞에 두고 자신의 과거를 어째서 철선(능력 있는 부유한 청혼자)에게 털어놓았을까. 다른 위안부 출신의 여인처럼 숨겼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 텐데. 그녀가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수없이 버리고 싶었고 미워했으며 두 마리 용빗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차라리 겪지 않아도 되었을 고통. 그 눈물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지켜낸 용빗을 애나에게 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질문들은 자희 스스로 수없이 퍼부었던 의문이자 독자에게 던지는 문제이며 화두였고 한국인으로서 꼭 알아야 할 역사이기도 하다. 여러 인물이 나오지만 자희에게 특히 큰 영향을 주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읽어가기를 추천한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엄연히 우리의 역사에서 발생한 끔찍한 사건과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악연이었던 다나카 중위, 마추모토 대령, 앨런 스미스, 일본 게이샤 세이코, 그녀의 사랑이었던 진모와 프랭크 크로포드 대령, 그리고 잠재적 사랑이자 악연의 경계를 모호하게 오갔던 남자 철선까지 다양한 군상 속에서 나를 포함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해 본다. 그녀라고 왜 괴롭지 않았겠는가. 그녀라고 왜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녀라고 왜 사랑을 갈구하지 않았겠는가.



자희는 슈퍼우먼이 아니었다. 자신을 지키는 수호신이자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이었던 용머리 빗이 늘 그녀를 지켜준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는. 위안부가 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북한 정권의 권력과 협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남한의 편견과 무시, 환멸을 없앨 수 없었다. 굶어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찾아간 기지촌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도 끊임없이 매춘의 유혹을 받았다. 자신과 같은 존재를 부정하고 숨기고 수치스러워하는 남한 사람들의 차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어 일본과 위안부의 실체를 알리려는 일에 힘썼지만 돌아오는 건 자신의 딸을 향한 남한 경찰의 협박뿐이었다. 하지만 위안부 가운데 유일하게 몹쓸 병에 걸리지 않았고 행운이라 칭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본 대령의 호의를 받기도 했다. 빚에 허덕이면서도 끝까지 ’ 주시 걸(매춘)’로 일하기를 거부했으며, 미군의 횡포에 당하기 직전에 자신을 존중하는 다른 미군 장교의 보호와 도움을 받기도 했다. 타고난 언어감각으로 북한에서는 물론 남한에서 통역과 번역으로 딸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유일한 딸을 잃었으나, 그 딸이 남긴 딸이자 자신의 유일한 손녀에게 무사히 빗을 물려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빗을 지키고 조국의 의미와 빗의 주인에게 맡겨진 의무와 책임을 다할 수 있었다.



빗을 손녀에게 완전히 넘기자마자 그녀에게 찾아온 병, 급속한 노화는 그저 우연의 일치였을까. 그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살아남았고 무엇을 위해 그 빗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무엇을 지키기 위해 그 수많은 선택을 감행하고 감내할 수 있었을까.


철선이 자희의 과거를 비난하며 자희가 자살했어야 한다고 악담을 퍼부었다. 상처받은 자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통해 독자는 그녀의 삶의 목적과 주제의식을 알 수 있다.






철선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물론 수희 언니에게 편지를 보내기 위해서 그의 돈이 필요하긴 했다. 나는 수보를 고등학교로 보내기 위해서라도 그와 결혼하길 원했다. 심지어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와 결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부인한다면, 위안소에서 일했던 내 언니와 다른 위안부 자매들을 배신하는 것과 같다. 그럴 수는 없다. 내게는 한국의 체면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무가 있었다.
273쪽/<용의 딸들 Daughters of the Dragon>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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