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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Apr 17. 2024

14화 강아지, 개미, 그리고 군인

브런치북, 그 이후 이야기

아이가 입대한 지 약 세 달이 되었다. 우리는 18개월 중에 벌써 3개월이 지났다며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고 한탄했지만 아이는 겨우 3개월밖에 안 되었냐고 한탄한다. 물리 법칙과 진공 중의 빛의 속력이 모든 관측자에게 동일하다고 주장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도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소용이 없나 보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생각을 낳을 수 있으니 말이다. 

첫 달의 일반 훈련, 두 번째 달의 후반기 교육 후 자대 배치를 받고 아이는 처음에 무척 좋아했었다. 경기도의 한 부대에 배치받아 행운 중에 행운을 설파했던 아이는 얼마 되지 않아 발을 다쳤다고 했다. 부대원들과 축구를 하게 되었는데 골대에 부딪쳤는지 그만 인대가 늘어나 깁스를 하게 된 것이다. 훈련소에서도 척추 통증이 심해져서 응급조치를 한 게 여러 번이었는데, 설상가상 발까지 외상을 입어 분대 내에서 눈치가 더 보인다고 했다. 모두 각자의 임무를 이행하며 훈련을 하는데 열외로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져 미안하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한 모양이었다. 

주말이 되어 아이가 미리 신청하여 가족 첫 면회를 가게 되었다. 소문을 듣고 부대 근처에 사는 친척들이 있어 동행하게 되었다. 아이의 고모와 사촌 형이 함께 했다. 부대는 비교적 조용한 외곽 지역이라 처음이라면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인터넷 지도 검색을 아무리 해 봐도 정확한 정보가 표출되지 않았다. 아이의 말로는 군대 시설이 원칙적으로 외부에 너무 쉽게 드러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가 전체의 보안이 걸린 문제라 지도 업데이트도 검색도 확실히 나타나지 않아 주변 지형을 이용하는 간접적 방법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군인의 가족이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정보나 내용을 접할 때마다 ‘역지사지’나 그 입장에 처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면회실에 들어가기 전 신분증 검사는 필수였다. 아이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군인 두 명이 신분증을 요구했다. 그냥 보고 돌려주는 게 아니라 면회가 끝나고 귀가하기 전까지 보관했다. 병원에서 처리하듯 방문객 목걸이를 주었고 친필로 사인과 맹세를 하는 내용 등 일종의 서약서를 인원수대로 빠짐없이 작성해야 했다. 사진 촬영도 금지해야 했고 당직 군인이 친히 핸드폰 카메라 부분에 촬영 금지 스티커를 붙여 주었다. 

아이를 호출했지만 생각보다 아이는 늦게 나왔다. 십 분이 넘게 걸린 이유는 아이가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알았다. 다친 발 때문에 깁스와 겨드랑이 양쪽에 목발을 짚고 천천히 걸어와야 했기 때문이다. 얼굴을 보자마자 반가움에 그런 모습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서로 인사하기 바빴다. 특히 이번에는 친한 사촌 형과 고모가 왔으니 더욱 신이 났을 터였다. 보자마자 ‘아, 형. 진심으로 부럽다. 예비군이라 정말 좋겠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면회실은 그저 탁자와 의자, 화장실만 있는 간소한 형태였지만 음식 배달이 허용된 공간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음식을 바리바리 쌀 필요가 없어서 요리를 못하는 나는 부담이 없어 좋았다. 대신 아이가 좋아하는 초밥만 조금 싸가지고 갔다. 아이는 점심으로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고 기다리는 동안 초밥은 애피타이저로 먹었다. 

18개월 중에 3개월이 지나는 동안 얼마나 할 말이 많은지 아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아버지, 형. 알겠지만 이 지역은 내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맡은 곳이에요. 적이 바다에 출몰하면 누가 먼저 움직일까요? 해병대죠! 그다음은? 해군이겠죠! 해군이 뚫리면 누가 싸워야 해? 바로 육군인 우리 부대가 나서야 한다니까요! 예? 엄마, 아빠를 지키기 위해서라니까요.’

누가 들으면 대한민국 안보는 혼자 다 책임지는 웅변 같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한편 그렇게 군대에 가기 싫다고 했던 아이가 막상 군대에 가니 이렇게 변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도 한참 이야기를 들어준 우리는 동행해 준 친척의 눈치가 보였지만 아이는 괜찮다며 막무가내였다. 

“빨리 안 가도 돼요. 5시까지 있어도 돼. 어차피 가면 선임들과 있어야 한단 말이에요.”

선임들이 잘해주지만 그래도 아이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게 더 좋았나 보다. 문득 이런 비유를 했다. 

 

“아빠, 내가 원래 강아지를 엄청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저 문밖에 지나가는 강아지를 보고 화가 나더라니까요. 저 강아지는 저렇게 자유롭게 바깥세상을 돌아다니는데 나는 이 구역 안에서 내 의지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에 억울하더라고요.”

내심 그 말에 수긍하면서 고개만 끄덕이는 나와 달리 남편의 반응은 이랬다.

 

“야, 아빠 군대 갔을 때 어땠는지 아냐? 어느 날 행군을 하고 부대로 돌아왔는데 부대 밖으로 개미가 지나가는 게 보이더라고. 아니, 부대에서 밖으로 나가는 개미였어. 그 개미를 보고 ‘나는 개미만도 못한 처지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라는 말에 함께 있던 남자들은 전우애와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동안 시간은 갔고 작별의 시간은 다시 다가왔다. 훈련소에 보내는 날, 퇴소식 날에도 밝고 씩씩했던 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눈에 촉촉한 기운이 깃들었다. 아이의 고모는 나중에 그 표정을 보고 차마 오래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마음이 짠하다고 했다. 나도 평소와는 달리 복잡한 심정, 현실을 자각한 듯한 아이의 표정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속으로 한 번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혹여 아이가 무너질까, 주변에서 지켜보는 군인들에게 누가 될까 조심스러워 그저 어깨만 살짝 두드려주며 인사했다. 

 

아이야, 우리뿐만 아니라 귀여운 강아지도 자유로운 개미도 너에게 고마워할 거야. 너와 함께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인 군인들 덕분에 우리의 일상은 자유로울 수 있으니 말이지. 힘들겠지만 늘 응원하고 감사하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꼭 알아주면 좋겠다. 오늘도 하트를 보낸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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