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변신

by 애니마리아


길을 걸었다. 그 길을


해가 바뀌어 다시 오리라는 약속을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외면했었다.


오늘은 너무 추워


오늘은 너무 길이 질퍽해


오늘은 이미 운동했어


오늘은 시간이 없어


그렇게 길은 희미해져 갔는데



문득 그 길을 걷고 싶어졌다.


벚꽃이 다 지기 전에


그 길을 다시 찾아가는 길


그 특별함을 기억해 냈다.



몇 년 전에 알게 된 길


사실 아이가 알려준 길


아이의 산책길이 나의 산책길이 되었고


그렇게 몇 년 동안 나의 명상 길이 되었지


운동길이 되기도 했고


산소길이 되기도 했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나를 격려해 준 길이기도 했어



길을 걸었다. 그 길을


작년에도, 그전에도 걸었던 똑같은 길.


이번에는 뭐가 그래 새로웠을까


무엇이 나를 이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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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만난 개미 한 마리에


흠칫 놀라며 멈추었다.


부지런한 한 마리, 뭐가 그리 애틋했을까


군대에서는 개미보다 자유가 없다며


웃으며 한탄하던 아빠와 아들


그 두 사람이 생각나서일까



그 사람이 생각나고


그 사람이 소중하고


그 사람이 보고 싶고


그 사람이 느껴지면



풀도 변하고


개미도 변하고


꽃도 변하고


모든 게 변한다


그 길은 더 이상 같은 길이 아니다





별과 눈이 박힌 땅을 바라보니


나도 그와 같은 마지막을 맞고 싶어졌다.


그럴 수 없다면 가고 난 후 누군가의 별로 남는 것도 좋겠지.


아니, 꼭 별이 되고 싶다. 어두운 밤에도 무섭지 않도록


촉촉한 눈물 대신에 촉촉한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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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었다. 그 길을


그 길은 움직인다


그 길은 변화한다


가면 놀이를 하듯 여러 가지 얼굴을 보여준다



길에 떨어진 검은 깃털 두 개


어떤 새의 깃털이려나


산까치의 깃털일까


산책길에 늘 졸망졸망 걸으며 인사하던


그 까치 깃털일까


반가운 마음도 잠시


돌연 슬퍼지며 걱정의 의문이 든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친구 새와 싸웠을까


고양이에게 당한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게 상상의 이야기를


만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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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했지


꽃길만 걸으라고


꽃길을 걷길 바란다고


그런 꽃길은 이렇게 아름다울까


인생은 늘 꽃길은 아니지만


벚꽃이 떨어진 이 길도 영원하지 않지


그래도 다시 올 것을 아는 우리는


행복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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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화려한 크레파스도


자연의 연두색을 따라갈 수 있을까


그 길을 걸으면 볼 수 있는 풀빛


연두색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개나리꽃


그보다 더 내 눈에 안식을 주는 색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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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었다. 그 길을


나무 아래 떨어져도 지지 않는 벚꽃 잎을


봄의 은하수를 만들어 하늘의 별 자국이 생겼구나


그 길을 본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잠시 멈추고 낮잠을 자고 가도 이상하지 않을 그 길



해를 넘기면 또다시 변신하겠지만


오늘 나는


고마운 그 길을


눈에 꼭꼭 담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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