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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Apr 24. 2024

길의 변신


길을 걸었다. 그 길을


해가 바뀌어 다시 오리라는 약속을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외면했었다.


오늘은 너무 추워


오늘은 너무 길이 질퍽해


오늘은 이미 운동했어


오늘은 시간이 없어


그렇게 길은 희미해져 갔는데



문득 그 길을 걷고 싶어졌다.


벚꽃이 다 지기 전에


그 길을 다시 찾아가는 길


그 특별함을 기억해 냈다.



몇 년 전에 알게 된 길


사실 아이가 알려준 길


아이의 산책길이 나의 산책길이 되었고


그렇게 몇 년 동안 나의 명상 길이 되었지


운동길이 되기도 했고


산소길이 되기도 했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나를 격려해 준 길이기도 했어



길을 걸었다. 그 길을


작년에도, 그전에도 걸었던 똑같은 길.


이번에는 뭐가 그래 새로웠을까


무엇이 나를 이끌었을까









걷다가 만난 개미 한 마리에 


흠칫 놀라며 멈추었다. 


부지런한 한 마리, 뭐가 그리 애틋했을까


군대에서는 개미보다 자유가 없다며


웃으며 한탄하던 아빠와 아들


그 두 사람이 생각나서일까



그 사람이 생각나고


그 사람이 소중하고


그 사람이 보고 싶고


그 사람이 느껴지면



풀도 변하고


개미도 변하고


꽃도 변하고


모든 게 변한다


그 길은 더 이상 같은 길이 아니다





별과 눈이 박힌 땅을 바라보니


나도 그와 같은 마지막을 맞고 싶어졌다. 


그럴 수 없다면 가고 난 후 누군가의 별로 남는 것도 좋겠지. 


아니, 꼭 별이 되고 싶다. 어두운 밤에도 무섭지 않도록


촉촉한 눈물 대신에 촉촉한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길을 걸었다. 그 길을


그 길은 움직인다


그 길은 변화한다


가면 놀이를 하듯 여러 가지 얼굴을 보여준다



길에 떨어진 검은 깃털 두 개


어떤 새의 깃털이려나


산까치의 깃털일까


산책길에 늘 졸망졸망 걸으며 인사하던 


그 까치 깃털일까


반가운 마음도 잠시


돌연 슬퍼지며 걱정의 의문이 든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친구 새와 싸웠을까


고양이에게 당한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게 상상의 이야기를 


만드는 중이다













누군가 말했지


꽃길만 걸으라고


꽃길을 걷길 바란다고


그런 꽃길은 이렇게 아름다울까


인생은 늘 꽃길은 아니지만


벚꽃이 떨어진 이 길도 영원하지 않지


그래도 다시 올 것을 아는 우리는


행복한 존재









그 어떤 화려한 크레파스도


자연의 연두색을 따라갈 수 있을까


그 길을 걸으면 볼 수 있는 풀빛


연두색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개나리꽃


그보다 더 내 눈에 안식을 주는 색이 있을까










길을 걸었다. 그 길을


나무 아래 떨어져도 지지 않는 벚꽃 잎을


봄의 은하수를 만들어 하늘의 별 자국이 생겼구나


그 길을 본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잠시 멈추고 낮잠을 자고 가도 이상하지 않을 그 길



해를 넘기면 또다시 변신하겠지만


오늘 나는 


고마운 그 길을 


눈에 꼭꼭 담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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