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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May 01. 2024

15화 아빠의 생일과 아들

매너리즘에서 빠져나온 생일

 아이를 면회한 지 며칠이 지나 안드레아(남편)의 생일이 다가왔다. 사실 남편의 생일은 몇 년 전 날짜가 바뀌었다. 요즘은 생일을 음력으로 지내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나와 세 살 차이밖에 나지 않은 남편도 음력으로 생일을 지내오고 있다 해서 잠시 당황한 적이 있다. 사실 친정 쪽 네 형제, 시댁 쪽 네 형제 모두 합해서 양력 생일을 지내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20년 가까이(갑자기 세월이 느껴진다:) 지내다가 안드레아가 자신도 양력 생일을 지내고 싶다고 했다.  


  시작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코로나 시기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아이들 앞에서 양력 생일을 언제로 정하느냐에 대해 말이 나왔다. 나는 안드레아가 음력 생일을 기반으로 양력 생일을 정할 거라 추측했지만 아니었다. 나는 괜히 전통을 중요시 여기시는 시부모님 앞에서 괜찮겠냐고 걱정했지만 안드레아는 개의치 않았다. 


   "괜찮아. 나도 편하게 색시처럼 양력으로 하고 싶을 뿐이야."  


  여러 안이 나왔지만 최종으로 정한 날짜는 4월 16일이었다. 전에 지내던 음력 생일 시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안드레아는 이 날짜를 고집한 이유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친척들 앞에서 그 이유를 다시 언급하며 기억해 줄 것을 부탁했다. 


     "자, 다들 헷갈리면 '잊지 않겠습니다' , 이 말만 떠올리면 됩니다. 앞으로 4월 16일이 내 생일이에요"


 4월 16일. 바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이다(2014년 4월 16일). 처음에는 과연 안드레아의 말대로 될까 싶었다. 그전에 나는 양력으로 하면 쉬운데 음력으로 하면 매년 날짜를 따로 계산해서 기억해야 한다며 투정 같은 농담을 하긴 했다. 안드레아는 정말 그 말을 새겨들은 것일까? 알겠다고 하더니 시댁 단체 톡에도 앞으로 자신의 양력 생일을 기억해 달라고 누누이 말했다. 하지만 평생 해 온 습관이 있어서 새롭게 정한 생일을 기억하는 분의 거의 없었다. 나만 옆에서 소소히 챙겼을 뿐.


  올해 그날이 되자 나는 우선 우리 가족 톡에 '아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라고 올렸다. 별 반응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아빠 생일을 알았으면 해서다. 종일 거의 말이 없었지만 저녁 즈음에 군대에 간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저녁 시간 잠깐 핸드폰을 쓸 수 있다며 아빠의 생일을 축하하는 전화였다. 아이와 집에서 함께 지낼 때는 없었던 다정함과 애틋함이 느껴졌다. 그때는 밖에서 각자 자신의 일상을 보내고 밤늦게라도 케이크를 앞에 두고 생일 축하 노래를 함께 불렀지만 그저 하나의 담담한 행사였다. 집에서 멀어진 아이의 전화는 또 다른 감정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그게 뭔지 정확히 꼬집어 낼 수는 없지만 말이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며 있으면서도 아빠의 생일을 축하하는 아이에게도 고맙고, 올해는 남편의 새 생일을 기억해 주는 시댁 식구가  있어서 고마웠다. 시댁 식구의 단체 톡도 있는데 한 분이 올리니 너도나도 축하의 메시지를 올리셨다. 남편은 너스레를 떨며 답변했다.


   "모두 감사합니다. 올해도 기억 안 해주면 양력 생일 안 지내려고 했거든요, 하하하."


  어른이 되어도 우리는 늘 사랑에 목마른 존재인 듯싶다. 사랑은 타인의 나에 대한 생각이고 기억이며 표현을 통해 좋은 향기를 내뿜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은 존재의 인정이고 가치의 발견이므로. 존재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짧은 순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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